1859년 1월 6일 | 哲宗10 | 己未 | 새벽부터 눈오다가 낮에 맑다.
1859년 2월 8일 | 哲宗10 | 己未 | 안개 낀 후 맑다.
하회 족숙이 회공(會工)차 고산(高山)으로와 족장(族丈)댁에 외로의 글을 부치고 노새 새끼를 보냈다.
1859년 4월 3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1859년 4월 11일 | 哲宗10 | 己未 | 흐리다가 맑다.
1859년 6월 4일 | 哲宗10 | 己未 | 바람불고 흐리다.
저녁에 비가 왔다.
1859년 3월 5일 | 哲宗10 | 己未 | 비
새벽부터 비가오더니 종일 크게 쏟아져 개울이 가득찼다.
1859년 4월 20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낮에 반촌에 머물던 첨우(僉友)와 더불어 동소문 밖 수이정(秀異亭)이 갔는데 경치가 좋았다. 이 정자는 정상서(鄭尙書)가 세운 것으로 산을 깍고 바위를 열고 연못을 만들었으며 종남을 면대하니 가히 볼만하였다. 편지를 써서 김포(金浦)족조가(族祖家)에 하인편으로 보냈다.
1859년 1월 7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어제 대사간 이정신(李鼎臣)이 상소하여 권돈인의 오레산방죄를 논하였는데 양사에서 합계(合啓)하여 연산현(連山縣) 중도(中道)에 처하게 하였다. 판교(板橋) 김주언(金周彦)이 내려가는 편에 달성시험장에 있는 주아(周兒)에게 편지를 부쳤다.
1859년 2월 9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달성(達城) 동당(東堂) 방안(榜眼)을 보니 주아가 3등으오 참여하였다. 아주 축하할 일이다.
1859년 4월 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흐리고 낮부터 비가 내리다.
1859년 4월 12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1859년 6월 5일 | 哲宗10 | 己未 | 새벽에 큰비가 내리다. 식후에 맑다.
증왕모(曾王母) 기일이 지나가니 추모가 더욱 간절하다.
1859년 4월 13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1859년 4월 21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김포(金浦)족조가(族祖家)에서 110냥을 빌려왔다.
1859년 6월 18일 | 哲宗10 | 己未 | 흐리다가 비가 내리다.
저녁 후에 천둥번개가 치더니 소나기가 오다가말다가 하였다.
1859년 3월 30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오후 3시 후에 궁궐에 나아가 은혜에 감사드리려고 하였다. 조방에 도착하니 집의(執義) 정기용(鄭虁容) 또한 숙배(肅拜)를 하러 왔다가 부득이하게 3시 이전에 숙명(肅命)하여 의례를 청추하니 황송할뿐이다. 선성(宣城)수령 사형에게 편지를 써 부쳤다. 오후에 바람과 구름
1859년 2월 3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1859년 2월 11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우천(愚川) 강릉영감(江陵令監)이 상경한다고 한다.
1859년 4월 6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1859년 5월 28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용계사형의 답서와 이응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모두 편안하다고하니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