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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9일
| 哲宗10
| 己未
| 바람 불고 추운 것이 매우 심하다.
아침에 또 좨주(祭酒)를 겸직(兼職)하는 일로 편지를 써서 <지명>사동(寺洞)지명>에 부쳤으니, 내일 차대(次對)를 하기 때문이다. 교리(校理) <인명>강진오(姜晉吾)인명>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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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5일
| 哲宗10
| 己未
| 맑고 춥다.
아침에 주서(注書) <인명>강경규(姜景圭)인명>가 내방했다. 자는 순가(舜歌)인데 그 사람은 매우 자상하고 친애할 만 사람이었다. 어떤 곳에 가서 그를 만났을 때 질아(姪兒)의 도당록(都堂錄)을 부탁하자 허락해 주었고, 선대(先代)의 일을 부탁하자 자상하게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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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4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춥다. 밤에 바람 불고 비가 오다.
식후에 모처(某處)로 가 김 감목(金監牧)을 만나지 못했으나 한참 동안 수초(酬酢)하다가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정 정랑(鄭正郞)을 찾아갔으나 역시 만나지 못했다. 이조(吏曹) 관리 <인명>김상식(金相植)인명>이 와서 부사과(副司果)의 교지(敎旨)를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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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8일
| 哲宗10
| 己未
| 날이 매우 춥다.
류 침랑(柳寢郞)이 종묘(宗廟) 앞 여관으로 우소(寓所)를 옮긴다고 하기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보내 옮기는 것을 도왔다. 밤에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彙承)인명>이 와서 놀다가 돌아갔다. 꿈에 내가 <지명>회동(會洞)지명> 정 합(鄭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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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6일
| 哲宗10
| 己未
| 저녁 후에 눈이 많이 내리다.
아침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에게 교지함을 지고 제석(除夕)에 맞춰 내려가게 했다. 생각건대 촌내의 여러 종형과 여러 족종들이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고서 분명히 기쁘게 경하하고 손뼉을 칠 것이니, 자못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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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검은 안개가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증첩(贈帖)에 관한 일로 이리(吏吏)에게 다녀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편지를 써서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보냈다. 내가 또 한천 령(寒泉令)의 집에 직접 가서 장차 나를 대신하여 모처(某處)에 내보내려고 했지만, 이 영감이 눈병이 있어서 나갈 수 없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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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9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싸라기눈이 내리다가 이윽고 큰 눈이 내리다.
하루 동안 한 곳이라도 가려고 탈 것을 빌렸지만 빌리지 못했다. 밤에 방이 쇠처럼 차가우니, 대개 서북(西北)방의 미풍(微風)과 구들에 불을 넣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전반측(輾轉反側)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간혹 일어나 앉거나 누워서 기침을 하니 무료함을 견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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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3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바람이 불다. 늦은 아침 뒤에 조금 풀렸다.
들으니 조 내인(趙內人)이 왕자를 순산했다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신민(臣民)의 행복 중에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척종질(戚從姪) 원방(元方)이 또 내방했다. 저녁에 금일 정사(政事)를 보니 감조관(監造官) 실직(實職)이 단지 장악주부(掌樂主簿)만 하는 줄 알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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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8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지명>회동(會洞)지명> 정 합(鄭閤)의 집에서 빌려온 연주초(筵奏草)를 직접 전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묘지(墓誌)를 세밑에 청할 일이 있으니 정리 상 빠뜨릴 수 없다. 이에 저녁에 류 침랑(柳寢郞)의 노새를 빌려 문안을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진사(進士)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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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검은 안개가 사방에 가득하다.
어제 저녁에 감역(監役) <인명>류치윤(柳致潤)인명>이 공적인 이유로 하인을 빌리기를 청했지만 내려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저녁에 류 감역(柳監役)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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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1857
| 고서-일기
| 개인-생활-일기
| 김중휴
| 안동 오미 풍산김씨 참봉댁
김중휴(金重休)가 1857년부터 1860년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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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이원조(李源祚) 서간(書簡)
1859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원조
| 안동 오미 풍산김씨 영감댁
1859년 9월 26일, 이원조가 하회에 갔다가 상대방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적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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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59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철종,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9년(철종 10) 1월, 국왕이 李源祚를 嘉善大夫 行 龍驤衛 護軍 兼 五衛都摠府 副摠管으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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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59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철종,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59년(철종 10) 1월, 국왕이 李源祚를 嘉善大夫 行 龍驤衛 護軍으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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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60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철종,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0년(철종 11) 12월, 국왕이 李源祚를 同知 義禁府事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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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60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철종,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0년(철종 11) 12월, 국왕이 李源祚를 嘉善大夫 行 龍驤衛 護軍 兼 五衛都摠府 副摠管으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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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64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고종,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4년(고종 1) 11월, 국왕이 李源祚를 嘉善大夫 行 龍驤衛 護軍으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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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64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고종,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4년(고종 1) 11월, 국왕이 李源祚를 嘉善大夫 行 司諫院 大司諫으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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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64
|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고종, 이원조
|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1864년(고종 1) 12월 2일, 국왕이 李源祚를 嘉善大夫 兵曹參判으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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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1859
|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이만각, 류기호
|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1859년 4월 23일, 이만각이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전하고 사위에 대한 보다 철저한 교육을 당부하기 위해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