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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9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춥다.
저녁에 <지명>대지(大枝)지명> 문중 하인 세 명이 와서 비로소 가서(家書)를 받아보니 모두 아무 탈이 없었다. 또 여러 종형제들의 편지가 있었는데, 선조의 일로 자못 성의가 있으니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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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7일
| 哲宗10
| 己未
| 이른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를 무릅쓰고 가마를 타고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가서 반나절을 몹시 기다리다가 저녁 후에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일과를 마치자마자 즉시 대신(大臣)에게 차대(箚對)에 대해 물어보니 말하기를, "내가 이미 언급했지만 대신들도 회공(恢公) 후에 연달(筵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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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5일
| 哲宗10
| 己未
| 바람이 약하게 불고 춥다.
연일 밤 꿈에서 화 조(華祖)와 돌아가신 여러 부형(父兄)을 보았고, 또 종가(宗家)에 큰 일이 있어서 빈객들이 분주했으니, 선사(先事)에 관한 예시인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앉으니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이 일이 성사된다면 내가 자손 된 책무를 이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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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또 눈이 내리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에게 노새를 빌려 곧바로 <지명>정동(貞洞)지명>에 가서 신임 성주(城主) <인명>엄돈영(嚴敦永)인명>을 전별하고, 또 그의 부친 <지명>석정(錫鼎)지명>을 만났다. 그다음 <지명>장동(長洞)지명>에 가서 이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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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1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고, 흑기(黑氣)가 있다. 만조(晩朝) 후에 날씨가 봄 같다.
<지명>대지(大枝)지명> 산직(山直) <인명>익형(益亨)인명>이 와서 묵었다. 편지를 가지고 체함(髢函)을 짊어지고 왔는데, 그 함(函)안에는 좌견비(左牽轡)가 들어 있었다. 이른 아침에 내려갔다. 한 곳에 가려고 류 침랑(柳寢郞)에게 노새를 빌렸는데, 그 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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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30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인명>임몽일(林夢日)인명>, <인명>운옥(雲玉)인명> 등이 내려가는 편에 가서(家書)를 부쳤다. 어제 저녁에 <인명>권평중(權平仲)인명>을 방문했다. 입재(入齋)하여 도식당(度食堂)에서 반장(泮長)을 만났고, 승보(陞補)와 통독(通讀)을 일시에 함께 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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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8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매우 춥다.
<인명>영직(英直)인명>을 <지명>사동(寺洞)지명>에 보냈더니 저녁에 돌아왔는데 또 답장을 받지 못했다. 이른 새벽에 <지명>오치(梧峙)지명> 산직(山直) 놈들이 솜을 팔고 돌아간다고 고하기에, 가서(家書)를 부치고 아울러 세의(歲儀)로 말린 민어(民魚)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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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3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어제 <인명>원방(元方)인명>을 만난 자리에서 <인명>류도민(柳道敏)인명>을 만나 전 영장(前營將) <인명>류상신(柳尙兟)인명>의 안부를 물어보니, 그의 집이 <지명>공주(公州)지명>에 있고 지금 상중에 있다고 말하기에 위문편지를 부쳤다. <지명>남촌(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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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5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항상 안개 기운이 있다.
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이리(吏吏)의 집으로 보냈으니, 직첩(職帖)을 상의하는 일 때문이다. 직 놈이 그 집에서 이리를 만나지 못하고 편지만 부치고 왔다. 저녁에 또 보냈더니 이리청(吏吏廳)에서 만나 바쁜 일을 제쳐두고 등서(謄書)하여 보냈다. 문신(文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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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눈이 내리다.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참봉(參奉) <인명>김병황(金炳昱)인명>의 사관(舍館)에 보내 훈장(訓將)의 답서를 받기를 구했다. 김 참봉(金參奉)이 훈장의 뜻으로 써서 보여주기를, 이미 전장(銓長)이 이판 겸 대제학(吏判兼大提學)으로 증첩(贈帖)을 썼다고 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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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바람이 없고 춥다.
좨주(祭酒)를 겸직하는 일로 <지명>사동(寺洞)지명>에 편지를 올리고, 또 이리(吏吏)에게 편지를 쓰고 증첩지(贈牒紙) 두 장과 필채(筆債)를 보냈다. 어젯밤 꿈에 내가 아무 시[寺]의 실직(實職)을 맡아 관황(官況)이 매달 4냥이었으며, 오늘밤 꿈에는 내가 과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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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2일
| 哲宗10
| 己未
| 또 검은 안개가 끼다.
이른 아침에 강 령(姜令)을 찾아가서 <지명>회동(會洞)지명>에 가서 이야기할 일에 대해 의논했다. 참봉(參奉) <인명>김병욱(金炳昱)인명>이 찾아왔으니, 대개 며칠 후 고향을 찾아가고자 해서이다. 좌랑(佐郞)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가 문안을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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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30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 녹은 물이 뜰에 가득하니, 길이 진창이 된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이 만약 어제 재를 넘지 못했다면 오늘 저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니, 멀리서 몹시 우려된다. <인명>원방(元方)인명>이 어제 낮에 편지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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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눈이 내리다.
<인명>이경천(李敬天)인명>이 배하인(陪下人)을 보내 장인을 부르는 결가(結價)에 대한 말을 전했다. 목궤(木几)이기 때문에 먼저 가물(價物) 2냥 7전을 주고, 붉은색으로 장식하는 값은 다시 주기로 약속했다. 가질(家姪)의 편지를 대신 써서 훈장(訓將)의 집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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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0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들으니 오늘 차대(次對)를 행했다고 한다. 저녁에 영합(領閤)이 아뢸 거조(擧措)에 대한 소식을 얻어 보니 <인명>잠암공(潛庵公)[김의정(金義貞)]인명>의 관함(官啣)이 적막한지 삼백년 만에 궁궐에 다시 오르게 되었으니, 자손 된 자로서 감격스럽고 슬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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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6일
| 哲宗10
| 己未
| 눈이 조금 내리다.
조반 후에 겸직(兼職)하는 일로 또 모처(某處)에 가려고 <지명>양동(良洞)지명> 이 주서(李注書)에게 노새를 빌려 잠깐 나갔는데, 자리가 소란해서 입을 열지 못하고 소찰(小札)을 써서 김 감목(金監牧)을 시켜 오늘 저녁에 통지하기를 기약했다. 김포 족숙(金浦族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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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4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장차 내일 작은 연회를 열기 위해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고향 집에 보냈으니, 절로 바쁜 일이 많았다. 이른 아침에 이조(吏曹)의 방직(房直)이 와서 교지(敎旨)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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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족숙(族叔) <인명>종렴(宗廉)인명> 씨(氏)가 감영에 올릴 글을 받기를 청하여 친족의 정의로써 힘써 시행하고, 이어서 <지명>남촌(南村)지명>을 향해 떠났다. 어제 훈장(訓將)의 집에 가가(架家)를 널리 세운 것을 보고 물어보니, 훈장의 생일이 이달 22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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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5일
| 哲宗10
| 己未
이른 아침에 작은 연회를 열었는데, 음식이 변변찮아서 부끄러웠다. 경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와서 참석했다. 승지(承旨) <인명>강면규(姜冕奎)인명>, 주서(注書) <인명>경규(景奎)인명>, 교리(校理) <인명>진규(晉奎)인명>,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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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6일
| 哲宗10
| 己未
| 밤에 눈이 내리다.
<인명>이경천(李敬天)인명>, 강 교리(姜校理), 좌랑(佐郞)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 배 지평(裴持平)이 찾아왔다. 나도 오후에 승지(承旨) <인명>이만운(李晩運)인명>의 병을 가서 살펴보고, 그다음 이 좌랑(李佐郞)의 반사(泮舍)에 갔다. 이어서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