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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춥다.
마병(馬病)이 돌아 고폐(痼弊)할 지경에 이르러 이전의 처방을 다시 시험하면 혹 덜 할 수도 있어 <인명>영직(英直)인명>놈으로 하여금 집에 끌어 보냈는데 죽지 않고 잘 도착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인명>영직(英直)인명>놈을 내려 보내면 나의 경과는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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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가랑비가 내리다가 오래지 않아 그치다. 날씨가 조금 춥다.
직한(直漢)에게 사내 한 놈을 빌려 <지명>사동(寺洞)지명>에 제수를 져 보낼 겸 물목 서찰을 보내게 했다. 승지(承旨) <인명>강면규(姜冕圭)인명>가 노비에게 편지를 보내와 1민(緡)을 빌려줄 것을 청했다. 나도 비용이 간두(竿頭)에 있었으나 억지로 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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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9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彙承)인명>과 주서(注書)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가 찾아왔다. 식후에 모처(某處)에 가려고 류 침랑(柳寢郞)에게 노새를 빌리려고 했지만 출타해서 과행하지 못했다. 저녁에 교리(校理) <인명>강진규(姜晉奎)인명>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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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7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매우 춥지는 않다.
사방의 산에 남은 눈이 거의 녹았다. 저녁에 <지명>대지(大枝)지명> 산직(山直) 놈 <인명>익형(益亨)인명> 등이 솜을 지고 와서 말하기를, "문중의 세 하인이 수일 내로 들어올 것이므로 편지를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한다. 강 교리(姜校理)가 출직(出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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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5일
| 哲宗10
| 己未
조반 후에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이 가서 <지명>전동(典洞)지명> 영은(永恩)의 답서를 받아왔으니, 대개 오늘은 그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인명>강면규(姜冕奎)인명> 령(令)과 교리(校理) <인명>진규(晉奎)인명>가 찾아왔다. 어제 솜 장수 편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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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17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조금 풀렸고 비올 기미가 있다.
<지명>사동(寺洞)지명>에 갈 문자(文字)를 어제 다 쓰지 못해 오늘 아침에 다 마쳤다. 감목(監牧)이 있는 곳에 <인명>영직(英直)인명>놈을 보내 그로 하여금 2책과 2폭의 문자를 올리게 했다. 류 침랑(柳寢郞), 강 교리(姜校理)가 내방했다. 병든 말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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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지명>삼각산지명> 봉우리들이 눈으로 하얗다. 아침 뒤에 승지(承旨) <인명>강면규(姜冕圭)인명>, 승지 <인명>이만운(李萬運)인명>, 주서(注書) <인명>김희국(金熙國)인명>이 내방했다. 『음보(蔭譜)』를 빌리는 일로 <지명>회동(會洞)지명> 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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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0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비가 내리다. 밤에 바람이 많이 불고 춥다.
어제 반주(泮主)가 지붕을 덮은 일 때문에 돈 삼 민(緡)을 주었다. 나태함으로 인해 다시 이엉하지 못하고 있다가, 비를 만나서 마음이 매우 근심스러웠다. 류 침낭(柳寢郞)이 능소(陵所)에 입직(入直)에 입직하고 이른 아침에 와서 보았다. 조반 후에 승지(承旨)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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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2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지명>사동(寺洞)지명>에 <인명>영직(英直)인명>놈을 보내 두 태(台)의 답서를 찾아오고자 하였으나 모두 답이 없었다. 혹 어수선하고 떠들썩하여 답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참으로 이상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 반촌(泮村)에 인사를 닦았다. 류 침랑(柳寢郞),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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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두터운 서리가 내리고 흐리다.
아침 전에 또 <인명>중륜(重崙)인명>과 <인명>영직(英直)인명>놈을 내보내 <지명>종로(鐘路)지명>에서 과일과 종이 상자를 사오게 했다. 승지(承旨) <인명>강면규(姜冕圭)인명>가 내방했다. <지명>회동(會洞)지명> 면상(綿商)등이 솜 값이 너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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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6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봄 같다.
주서(注書) <인명>권노연(權魯淵)인명>에게 노새를 빌려서 서소문(西小門) 밖으로 나가 판서(判書) <인명>홍우순(洪祐順)인명>을 조문하고 이어서 <지명>정동(貞洞지명>)에 가서 신임 성주(城主) <인명>엄돈영(嚴敦永)인명>을 방문했다. 그 사람됨이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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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바람이 없고 춥더니 종일 날씨가 좋지 않다.
세수도 하지 않았는데 석사(碩士) <인명>이휘필(李彙弼)인명>이 찾아왔다. 그의 괴로운 모습은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 근심스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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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안개가 끼다. 또 구름이 껴서 흐리고 바람이 불다.
경천 령(敬天令)이 찾아왔는데 『여지(廬誌)』를 인쇄하는 것을 홀로 기쁘게 여기니, 바야흐로 병유혈당(屛儒血黨)이라 이를 만하다. 어제 낮에 상사(上舍) <인명>홍인섭(洪寅變)인명>의 집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다만 동재(東齋)에서 상사(上舍) <인명>권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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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8일
| 哲宗10
| 己未
| 새벽에 바람이 많이 불고, 아침에 매우 춥다.
적막함을 깨뜨릴 길이 없어서 문을 닫고 『남정록(南征錄)』을 베꼈다. 본촌(本村) 수령곡(水令谷) 놈이 솜을 지고 찾아왔는데, 가서(家書)는 받지 못했다. 지평(持平) <인명>배상련(裴相璉)인명>이 또 찾아왔다. 저녁에 상사(上舍) <인명>권재형(權載衡)인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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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16일
| 哲宗10
| 己未
| 춥다.
<인명>최성장(崔聖章)인명> 형이 찾아왔으니, 대개 나그네 신세로서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 감목(監牧) 집의 인편으로 가서(家書)를 부쳤는데 혹 전해지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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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1월 24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매우 춥지는 않다.
이른 아침에 <인명>원방(元方)인명>이 들어와서 내일은 영은(永恩)의 생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편지를 써서 하인을 보냈다. <인명>최성장(崔聖章)인명>과 참봉(參奉) <인명>김희영(金熙永)인명>이 찾아왔다. 대개 내가 <지명>반촌(泮村)지명>에 들어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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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2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매우 춥다.
신임 성주(城主)를 전송하려고 권 주서(權注書)에게 노새를 빌렸지만 또 과행하지 못했다. <지명>양동(良洞)지명> 주서(注書) <인명>이재규(李在奎)인명>가 찾아왔다. 듣건대, <지명>표곡(瓢谷)지명> 감역(監役) <인명>류치윤(柳致潤)인명>이 오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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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2월 10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고 춥다.
오늘 대신(大臣)들의 차대(次對)가 있었다고 하는데, 궁벽한 곳에 칩거하고 있어서 적막하게 그것을 듣지 못했으니 답답하다. 이른 아침에 노주(老主)와 <인명>영직(英直)인명> 놈을 보냈는데, 이리청(吏吏廳)에 가서 <지명>이경민(李慶敏)지명>을 찾아가 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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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부터 구름 끼고 흐리다.
집에 편지를 썼다. 면상(綿商)등이 종일토록 소식이 없다. 가격이 떨어져 팔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이랑(吏郞) <인명>이석주(李錫宙)인명>, 주서(注書) <인명>이유로(李有魯)인명>가 내방했다. 밤에 승지(承旨) <인명>이휘승(李彙升)인명>이 놀러 왔다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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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0월 2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두터운 서리가 내리고 흐리다.
<지명>원촌(遠村)지명> <인명>이태(李台)인명>의 전별자리에 가려고 족제(族弟) <인명>중륜(重崙)인명>과 <인명>영직(英直)인명>놈으로 하여금 점포에 나가 물고기와 과일을 사오게 했는데 늦은 아침 뒤에 들어왔다. 많은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