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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23일
| 哲宗10
| 己未
<지명>산양(山陽)지명> <인명>채우(蔡禹)인명> 형이 찾아왔는데 그 사람됨이 사뭇 문아(文雅)했다. 한참을 이야기 했다. 촌내 양잠을 하는데, 날씨가 조석으로 매우 추워 삼면(三眠) 후에 태반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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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3일
| 哲宗10
| 己未
<지명>하계(下溪)지명> 인종손(姻從孫)이 그저께 왔다가 오늘 아침 돌아갔다. 계아(季兒)는 어제 <지명>위라(位羅)지명> 최 선달(崔先達)집에 가서 밀양(密陽) 박 선달(朴先達)이 한양에서 온 소식을 전했다. 북소(北騷)가 과연 한 입에서 나온 듯했다. 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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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11일
| 哲宗10
| 己未
광흥사(廣興寺) 승려 유선(有禪)이 찾아와서 세 아들들의 안부를 들을 수 있었다. 앞 점포 <인명>순학(順學)인명>놈이 <지명>삼척(三陟)지명>에서 주초(朱草)를 사와서 9근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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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19일
| 哲宗10
| 己未
| 비가 개지 않다.
밤 꿈에 시재(時宰) <인명>김좌근(金左根)인명>, <인명>김흥근(金興根)인명>과 더불어 군국(軍國)의 일을 상의했다. 나 같은 하급관리와 상의할 만한 것이 아닌데, 또한 괴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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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7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국내(局內)의 약상(藥商) <인명>김재춘(金在春)인명>이 어제 조반 후에 <지명>한양지명>에서 내려와 곽향(藿香)등의 약물을 두루 넣어 전했고 잡약과 초갑(草匣)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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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이 비 조짐이 말끔히 개다.
최 선달(崔先達)이 올라와 한참 동안 적막함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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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14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인명>김이형(金履亨)인명>이 <지명>신경(新京)지명>, <지명>봉평(鳳坪)지명>에서 와서 서호서원(西湖書院)의 전(傳)과 기(記)를 베껴 썼는데, 장차 원(院)에 넣기 위함이었다. 시국 소식이 많았다. <지명>소호(蘇湖)지명>의 상인(喪人)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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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11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오늘부터 촌중(村中)의 하과(夏課)라, 젊은이들이 일제히 모여 하루에 2수(首)의 제(題)를 청하여 그 말에 따라 출제하여 주었으나 강독을 그만 둔 것 또한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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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19일
| 哲宗10
| 己未
| 따뜻하다.
병산서원(屛山書院)에 과거합격자가 있어 신방회(新榜會)를 미리 통고하였으나 신기(神氣)가 고르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 며칠 내로 신평 빈(新坪賓)이 부(府)에 들어가니 탈이나 돌려보내는 문기(文記)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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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4월 28일
| 哲宗10
| 己未
| 하늘에 한 점의 빗방울도 없다.
이미 21일이나 되었다. 지난해의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대부분 잔수(殘水)들이어서 이앙이 과연 계획대로 될 수 있을까? <지명>하리(下里)지명> 진사(進士) <인명>이경휴(李景休)인명>가 와서 <지명>한양지명>에 참혹한 소식이 있는데 부(府)의 종들이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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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7일
| 哲宗10
| 己未
| 이른 아침 비가 내리다 개다.
앞 교외의 건답(乾畓)에 모내기를 많이 했다. 우리 집도 오늘부터 모내기를 시작했다. 종일토록 큰 바람이 불고 차가운 공기가 피부로 파고들었다. 혹 대한(大旱)의 징조는 아닌가? 견문록을 과연 얻어왔다. 보니 중국의 병란과 흉년으로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 또한 걱정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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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15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사방에서 보리를 베었다. 보리 이삭이 조석의 생계가 되니 내가 생각하기에 하루에 소비하는 양이 10일치 식량이 들어 그 피해가 오월 새 곡식을 미리 팔아 세금을 내는 것보다 심하니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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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3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비가 내리다. 저녁이 되어도 그치지 않고 밤에도 그치지 않다.
오늘 또 동쪽 답에 모내기를 했다. 재종질(再從姪) <인명>명흠(明欽)인명>이 <지명>하상(河上)지명>으로 부터 중원 칙사의 기별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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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2일
| 哲宗10
| 己未
<지명>거촌(巨村)지명> 척숙(戚叔) <인명>김문(金文)인명>이 찾아왔는데, 돌아가면서 볼만한 문구를 보고자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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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10일
| 哲宗10
| 己未
| 햇빛이 매우 성하여 혹한 열기를 견디기 힘들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지명>예천(醴泉)지명> <지명>사곡리(沙谷里)지명>에서 소가 괴물을 낳았는데, 허리 위는 사람 같고 허리 아래는 소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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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1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큰 비가 내리다가 오후에 개다.
시장에서 보리가 출하되어도 값이 더욱 폭등했다고 한다. 시장에서 1승(升)의 쌀 값이 2전(錢) 7엽(葉)이라고 하니 또한 괴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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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29일
| 哲宗10
| 己未
| 밤에 비가 내리다가 아침이 되자 쏟듯이 내리다. 또 장맛비를 이루는 듯 했다.
어떤 사람이 전하기를 <지명>합천(陜川)지명>에 <인명>주목(朱木)인명>이 있는데 환술(幻術)이 있어 족히 사람을 부를 만하고 그의 스승은 중국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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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8일
| 哲宗10
| 己未
수상한 배가 혹자는 30척이라 하고 혹자는 1척이라 했는데 그 높이와 폭이 산 같았으며, 그 징색(徵索)하는 것은 소 천 두(頭), 쌀 3백 석(石), 녹용(鹿茸), 인삼(人蔘) 등의 물건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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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6월 1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또 구름 기운이 있다. 늦은 아침부터 날씨는 붉은 화로 같았다. 오후에 광풍과 소나기가 잠시 지나갔지만 비가 겨우 먼지 적실 정도밖에 되지 않다.
듣자니 모레 <인명>낙규(洛圭)인명>를 매장한다고 했다. 만여와 장강을 대지에서 빌렸는데, 비록 전례는 없으나 죽은 이를 위해 그의 청을 따른 것이니, 이후의 폐단이 되는 일이 없을까? 날이 가물기가 이와 같기에 민심의 태반이 선한 성품을 잃어버렸다. 약간의 반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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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5월 6일
| 哲宗10
| 己未
| 밤에 한 쟁기의 비가 내리다.
들으니 동지 사행(使行)이 돌아와 『북경견문록(北京聞見錄)』이 있으니 영외(嶺外)로 파전한다고 하여 편지를 써서 촌한(村漢)들로 하여금 <지명>하상(河上)지명> 류 척질(柳戚姪) 부쳐 구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부내(府內)의 <인명>전재춘(全在春)인명>이 상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