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9년 8월 10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구름 끼고 흐리다.
차아(次兒)가 <지명>한양지명>으로 간 지 이미 21일째인데도 아직 소식이 없으니 매우 괴의하다. 염려가 날마다 깊어진다.
-
1859년 8월 18일
| 哲宗10
| 己未
뱃속이 편치 못한 것 때문에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다. 아침 늦게 <지명>서빙고진(西氷庫津)지명>에 도착했다. 난여(鑾輿)가 어제 산릉(山陵)에 행행(行幸)했다가 오늘 사시(巳時)에 행궁(行宮)으로 환어(還禦)한 것 때문에 의물(儀物)을 구경하러 온 잡인들이 진두(津
-
1859년 8월 26일
| 哲宗10
| 己未
| 전날 밤에 서리가 내리다.
입직(入直)했다가 와서 위장(衛將)의 집에서 묵었다. 평위제(平胃劑)를 복용했으나 쾌청하게 낫지 않았고, 겸하여 여독이 일어 종일 괴롭게 보냈다. 찰방(察訪) <인명>정창동(鄭昌東)인명>이 말미 장계[呈由]를 올리고 하향했다. 직중(直中)에서 집으로 보낼 편지를 써
-
1859년 7월 21일
| 哲宗10
| 己未
<지명>병곡(屛谷)지명>에 분황(焚黃)하는 일 때문에 온 면(面)사람들이 노동서당(魯東書堂)에 모였지만 나는 여름 감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
1859년 7월 29일
| 哲宗10
| 己未
| 종일토록 한증막이라 결국 세상에 살 경황이 없다.
소일할 계획을 세워 작은 마루에 자리를 옮기고 누워 『수호지(水滸志)』를 보니 어두침침 잠이 와 몇 장을 보지 못했다.
-
1859년 8월 8일
| 哲宗10
| 己未
| 흐리다가 볕이 나다가 하다. 찌는 듯한 더위가 7월 그믐 무렵과 다를 바 없으니 늦더위가 매우 극성이다.
-
1859년 8월 16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서늘한 기운이 들었으나 아침 이후에 날씨가 매우 더워 7월 10일 상간의 무더위와 다를 바 없다.
<지명>배감점(盃酣店)지명>에서 묵었다.
-
1859년 8월 24일
| 哲宗10
| 己未
이른 아침 또 직소(職所)로 향했다가 왔는데, 추위가 몸을 침범했다. 오늘 아침부터 태위장(太衛將)의 별가(別家)에서 기식(寄食)했다.【세 사람이 기거했다.】
-
1859년 9월 3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입직(入直)했다. 직장(直長) <인명>김형집(金亨集)인명>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그의 집은 <지명>정동(貞洞)지명>의 작은 땅에 있고, 이름은 이화장기(梨花庄基)라고 한다. 저녁에 약을 복용하는 일 때문에 담당 당상관(堂上官)이 퇴청(退廳)하지 않았는데도 나왔으
-
1859년 8월 23일
| 哲宗10
| 己未
| 바람이 크게 불다.
저녁에 반주가(泮主家)에 들어갔는데, 먼지바람이 눈을 가려 갈도(喝道)를 따라 가니 망칠(望七) 나이의 늙은이의 행색이 매우 우습다. 저물녘에 승선(承宣) <인명>류재가(柳載可)인명>를 방문하였고, 또 <지명>지곡(枝谷)지명> 권 아(權雅)를 방문했다. 반주가의
-
1859년 9월 2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임금이 금보(金寶)를 어람(御覽)하는 일 때문에 왕의 홍련(紅輦)을 모시고 대궐 안으로 들어갔다. 적봉(赤棒), 홍삽(紅翣)과 내인(內人), 어졸(御卒)들, 크고 작은 기치(旂幟)들이 앞에 나열되어 있었고, 갈도(喝道)를 내세워 대로(大路)를 지나니 망칠(望七)
-
1859년 9월 10일
| 哲宗10
| 己未
| 구름 끼고 흐리다.
입직(入直)했다. 괴질(恠疾) 때문에 소요가 나날이 심해졌다. 병조(兵曹) 서리(書吏) <인명>김연구(金鍊九)인명>가 ‘옥보문(玉寶文)’ 2폭(幅)을 인출하여 주었다. 모든 출입할 곳이 있어도 말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니 매우 고민되고 고민된다. 족질(族姪)이자 도
-
1859년 8월 4일
| 哲宗10
| 己未
| 저녁에 비가 올 듯하다가 밤에 비가 오다.
가동(家僮)들로 하여금 동남쪽의 마른 논에 두레박으로 물을 끌어 대게 했다. 가질(家姪)이 곡반(哭班)에서 돌아와 참여한 자가 매우 적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
1859년 8월 12일
| 哲宗10
| 己未
| 맑다.
장차 내일 사은숙배(謝恩肅拜) 행을 꾸려서 떠나려고 하는데 여러 행구(行具)들을 갑자기 마련하기 어려웠다. 계아(季兒)를 <지명>예천읍(醴泉邑)지명>으로 보내어 말과 가마꾼을 세를 내어오게 하였는데, 밤늦게 돌아왔다.
-
1859년 8월 20일
| 哲宗10
| 己未
아침에 본주(本主) <인명>홍문환(洪文煥)인명>이 새로 산 집으로 정했다. 배하인(陪下人) <인명>한학금(韓學金)인명>이 아들 <인명>수흠(守欽)인명>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니, 가고 머무는 서글픔이 없지 않다. 승지(承旨) <인명>이만운(李晩運)인명
-
1859년 8월 28일
| 哲宗10
| 己未
이불을 가지고 입직(入直)했다. 습의(習儀) 때 금관복(金冠服)을 입는 것에 관한 일로 승선(承宣) <인명>류재가(柳載可)인명>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답장을 보니 매우 낭패로 여기고 있었다.
-
1859년 9월 7일
| 哲宗10
| 己未
| 날씨가 조금 온화하다.
입직(入直)했다. 정랑(正郞) <인명>김상희(金相喜)인명>가 『대왕대비옥책(大王大妃玉冊)』, 『왕대비옥책(王大妃玉冊)』 인출 본 2건(件)을 가지고 와 전해 주었는데, 일전에 비록 직접 부탁한 것이나 그가 마음에 새겨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또 오랜
-
1859년 8월 25일
| 哲宗10
| 己未
직소(職所)에 들어갔다가 와서 위장(衛將)의 집에서 묵었다. 오늘 아침부터는 또 <인명>지차복(池車福)인명>의 집을 식주(食主)로 정했다. 설사병이 들어 밥맛이 없었다.
-
1859년 9월 4일
| 哲宗10
| 己未
| 아침에 추위가 심하다.
아침에 추위가 심하니 머지않아 서리가 내릴 듯하다. 장차 곡식에 해가 있지는 않을까? 이른 아침에 입직(入直)했다. 참봉(參奉) <인명>정기덕(鄭基德)인명>이 <인명>김형집(金亨集)인명> 대신 오늘 아침에 처음 출사(出仕)하였는데, 그 또한 병인년(丙寅年) 생이
-
1859년 1월 3일
| 哲宗10
| 己未
<지명>하상(河上)지명> 표질(表姪) <인명>류진황(柳進璜)인명>이 편지로 안부를 물었고 <인명>진우(進瑀)인명>는 아들 <인명>도직(道直)인명>을 보내 문안했고 또 편지로도 안부를 물었으며, <지명>우천(愚川)지명> 승지(承旨) <인명>류후조(柳厚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