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8월 23일, 柳道獻이 묘갈명 초본에 교정할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전하기 위하여 李燦和에게 보낸 편지
1909년 8월 23일, 柳道獻이 묘갈명 초본을 보낸 후 교정할 것이 있으면 도로 알려달라고 전하기 위하여 李燦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일전에 찾아오셨을 때는 잠시 얼굴을 뵈었으나 다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하고 흐린 가을 날씨에 정양 중의 체도가 계속 보중한지 안부를 묻고, 비석을 세우는 일은 이미 착수하였으며 차례로 두서를 잡아가는지 알고 싶다 하였다.
자신은 지난번 모양 그대로이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며, 묘갈명 가운데 그대로 두거나 뺄 것이 있으면 회시해달라고 하였다. 마침 輔從[이름에 ‘輔’자가 들어가는 종반을 지칭함]이 가는 인편에 잠시 말씀드리고 인편이 바빠서 예를 갖추지 못한다고 하였다.
묘갈명은 류도헌이 찬한 이찬화의 12대조 訓導公 李河의 묘갈을 말한다.
발신인 柳道獻(1835~1909)은 본관은 豊山, 자는 賢民, 호는 田園이다. 進翼의 아들이며 溪堂 柳疇睦의 문인이다. 科擧에 여러 번 응하였으나 실패한 후 出仕를 단념하고 經史子集을 탐독하고 誠心修養에 힘썼다. 1893년 義禁府都事가 되었으며 문집 8권 4책이 전한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편지 뒷면에는 위의 류도헌 서간에 답한 李燦和의 서간이 있다. 편지 내용으로는 먼저 상대의 덕 있는 의용을 실컷 뵌 후에 또 보내준 안부편지를 받았다 하고, 다만 인편을 놓쳐 답장을 늦게 보내니 지금까지도 마음에 죄송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편지 이후에 달이 바뀌었는데 이 9월에 정양 중의 체후가 계속하여 만중한지 물었다. 자신의 졸렬하게 지내는 모양은 여전하다고 하고, 묘비 일은 이미 보름가량이 지났는데, 아마 이달 내로 공역을 마칠 듯하다고 하였다. 나중에 받은 묘갈명은 곳에 따라 부표하여 다시 베껴서 보내니, 살펴보신 후에 도로 보내주기 바란다 하였다. 담배는 향이 좋은 것을 얻기가 어려워 겨우 조금 낫다는 것 두 줌[把]을 구해 보낸다고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별지에 써두었다고 하였다.
이 서간에 대한 답장은 류도헌이 1909년 9월 22일에 보낸 서간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