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9월 22일, 柳道獻이 李燦和에게 先先生 묘갈문의 교정 의견에 이견을 제안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09년 9월 22일, 柳道獻이 李燦和에게 자신이 쓴 先先生의 묘갈문에 교정의견을 보내준 데 대하여 대부분 찬동하지만 한두 곳에 이견이 있어 다시 제안한다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 輔從[이름에 ‘輔’자가 들어가는 종반의 지칭] 편에 보내주신 편지를 받았으나 인편이 없어 답장이 늦으니 매우 죄송하다 하였다. 이어서 어느새 가을도 저물었는데 서리 내리는 계절에 상대의 체후가 계속 강녕한지 안부를 물었다.
선선생의 묘소에 비갈을 세우는 일은 지금 마쳤는지 물으며 보내주신 찌지로 표시한 교정 문자는 참으로 정밀하고 정당하여 고칠 것이 없다 하고, ‘復明’을 ‘素來’로 고친 것은 더욱 정중하지만 ‘替送’을 ‘送’ 한 글자로만 고친 것은 구본 그대로 ‘替’ 자를 채워 넣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자신은 한결같이 고달프게 지내니 말할 만한 것이 없다 하고, 더욱 몸을 아끼기 바란다는 인사로 말을 맺었다.
선선생의 묘갈명이란 訓導公 李河의 묘갈명을 말한다.
추신으로, 보내준 담배는 감사하기 한량없다고 하였다.
발신인 柳道獻(1835~1909)은 본관은 豊山, 자는 賢民, 호는 田園이다. 進翼의 아들이며 溪堂 柳疇睦의 문인이다. 科擧에 여러 번 응하였으나 실패한 후 出仕를 단념하고 經史子集을 탐독하고 誠心修養에 힘썼다. 1893년 義禁府都事가 되었으며 문집 8권4책이 전한다.
수신인 李燦和(1843~1925)는 자가 齊佰, 호는 可山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李晩恁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