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년에 朴南秀가 토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매매명문
신사년 2월 7일에 朴南秀가 토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매매명문이다. 이 문서는 성산이씨 홍와고택에 소장되어 있던 120여건의 매매명문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 매매명문 대부분은 발급연도를 연호를 사용하여 표기하지만, 본 매매명문은 간지로만 표기하고 있어서 서기연도를 산출하기 어렵다. 문서의 수취자를 표기하는 부분이 비어 있다. 이는 본 문서를 소지하고 있는 자가 곧 거래목적물을 매입한 사람임을 의미하며, 주로 19세기 이후 매매명문에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朴南秀는 스스로를 ‘標主’라고 하고, 매도 사유를 ‘요긴쓸 곳이 있어서[有要用處]’라고 적고 있다. ‘有要用處’는 ‘要用所致’와 함께 조선시대 매매명문에 매도 사유로 가장 흔하게 기재되어 있는 문구로서, 단지 명문의 구성요소를 채우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거래목적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소유경위 : 자기(가 매입한 것)
-위치 : 校後
-자호 및 면적 : 露字 22번 田 2負 2束 2마지기
-가격 : 동전 10냥.
‘負’는 조선시대 양전법에 의거한 토지면적 측정 단위이다. 경국대전 호전 양전조를 보면, 量田尺 1제곱척[實積一尺]을 1把라고 칭했고, 10把를 1束, 10束을 1負, 100負를 1結로 면적 단위를 정했다. 또한 토지의 비옥도에 따른 田分 6개 등급에 따라 길이를 재는 尺의 종류가 달랐는데, 1등척이 가장 짧았고, 6등척이 가장 길었다. 조선후기에는 1등척으로만 면적을 측량하되, 전분에 따라 일정한 비율을 곱해서 결부수를 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本文記는 토지를 파는 사람이 거래 목적물이 본인 소유였음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는 문서인데, 주로 이전에 토지를 취득할 때 받은 매매명문이나 분재기 등을 가리킨다. 본 매매명문은 ‘모년 申得求 방매 土地買賣明文’의 본문기로 함께 넘겨받은 것으로 보인다.
거래당사자 이외에 증인으로 尹同仁이 문서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문서 뒷면에는 추후에 문서를 관리하면서 적어 놓은 메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