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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정노(鄭奴) 기축(己丑) 수기(手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D.1901.0000-20180630.79223100028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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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증빙류-수기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경제-회계/금융-수기
작성주체 기축
작성시기 1901
형태사항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고령 관동 성산이씨 홍와고택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901년 정노(鄭奴) 기축(己丑) 수기(手記)
1901년(광무 5) 2월 9일 고령군(高靈郡) 옥산리(玉山里)의 두민(頭民)인 정노(鄭奴) 기축(己丑) 등이 성주군(星州郡) 운산리(雲山里) 마을 주민에게 작성해준 수기(手記)이다. 강변의 목초지를 두고 생긴 분쟁이 관아에 의해 조정된 이후, 양 마을에서 함께 사용하기로 약정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901高靈郡 玉山里의 頭民인 鄭奴 己丑 등이 雲山里 마을 주민에게 작성해준 手記
1901년(광무 5) 2월 9일에 高靈郡 玉山里의 頭民인 鄭奴 己丑 등이 星州郡 雲山里 마을 주민에게 작성해준 手記이다. 雲山里 마을 주민은 이웃인 玉山里 주민과 강변의 목초지를 두고 분쟁을 벌였고, 2월 7일에 관아에서 목초지를 함께 사용하라는 관아의 처결을 받은 바 있다.
雲山里 주민이 주로 고발한 대상은 玉山里鄭在華였다. 이 手記를 납부한 주체인 鄭奴 己丑의 상전이 鄭在華일 가능성이 크다. 己丑 이외에 成奴 尙春趙連卜도 문서 발급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수기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雲山洞 앞의 강변은 70냥의 값을 지급하고 서로 나무하고 가축을 먹였다[樵牧]. 지금 갑자기 館洞李斗勳에게 매각하여, 그 땅에 소나무를 심고 本洞은 樵牧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官庭에 呈訴하여, 다시 매각한 李斗勳은 還退하고 해동의 주민도 역시 복종하였다. 이에 이후의 樵牧하는 것은 서로 화합하여 말썽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한다. 양 洞이 樵牧하는 곳 안에 뒤에 만약 개간을 하는 폐해가 있으면, 그것을 소송하는 비용은 양 洞이 분담하여 禁護한다."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1년 정노(鄭奴) 기축(己丑) 수기(手記)

手記。
右手記事段。雲山洞前江邊。給價柒拾兩。而互相樵牧矣。今忽
更賣於館洞李斗勳。植松其地。使本洞不得樵牧。故呈訴官
庭。再賣之民。旣爲還退。該洞之民。亦爲自服從。玆以後樵之牧
之。互相和好。更不起鬧是遣。兩洞樵牧之內。後若有起墾之弊。其
起訟之費。兩洞分當禁護之意。如是成標事。
辛丑二月初九日。玉山頭民。鄭奴。己丑[着名]。成奴。尙春[着名]。趙連卜[着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