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년(肅宗 42) 2월 15일, 李益㱓가 李再顯에게 婢 1口를 팔면서 작성해준 노비매매명문.
1716년(肅宗 42) 2월 15일, 李益㱓가 李再顯에게 婢 1口를 팔면서 작성해준 노비매매명문이다.
문서의 발급 시기는 ‘강희 55년 병신, 2월 15일’로 표기되어 있다. 매매명문은 중국 연호를 이용하여 연도를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서의 수취자 즉 노비를 사는 주체는 ‘幼學 李再顯’이다. 문서의 발급자 즉 토지를 파는 주체는 ‘婢主 幼學 李益㱓’이다. 증인은 李益㱓의 同姓 4촌 ‘李益紀’과 아우 ‘李益載’이다. 필집은 ‘權有輝’이다. 발급자 및 증인, 필집은 수결을 했다.
노비를 파는 이유는 ‘요긴하게 쓰기 위해’라고 표현하였다. 거래대상 물려받은 것으로서, 奴 悅男이 양인인 처와 낳은 네 번째 소생인 婢 貴丁이다. 노비의 매매는 훗날 해당 노비가 생산한 소생의 소유권도 함께 넘기는 것이 관행이었다. 매매가격은 동전 16냥이다.
매매명문의 말미에는 해당거래와 관련된 사람들이 차후에 본 거래에 대하여 이의나 분쟁을 제기할 경우를 대비하는 ‘追奪擔保文言’을 적는다. 이 문서는 ‘나중에 혹시 자손 중에서 잡담하는 경우가 있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변정할 것’이라고 표기하였다.
한편 본 매매명문은 매매가 성립된 이후 입안을 발급받기까지의 과정을 증빙하는 문서와 함께 점련되어 있다. 점련된 문서는 총 5건이며, 이를 작성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문서는 노비를 판 李益㱓가 李再顯에게 발급한 奴婢賣買明文이다. 두 번째 문서는 李再顯이 관아에 입안을 신청하는 所志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서는 노비를 판 李益㱓과 證人 등의 진술서인 招辭이다. 다섯 번째는 柒谷府가 발급한 立案이다. 본 매매명문은 작성순서는 첫 번째이지만,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점련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田地, 家舍 및 奴婢를 매매하면, 100일 이내에 관아에 고하여 立案을 발급받도록 되어 있었다.(《經國大典》戶典 買賣限) 이는 관아의 공증을 통해 소유권 이양 사실을 명확히 하여,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田地, 家舍에 대한 입안을 발급받은 경우는 드물었고, 대개 노비를 매매했을 경우에만 입안을 발급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토지나 집 등은 부동산으로써 시간이 지나도 면적 등이 변동할 가능성이 적은 물품이지만, 노비는 출산이나 도망으로 인한 숫자나 소유권의 변동 큰 재산이기 때문에 소유권의 귀속관계도 복잡해질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