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8년(憲宗 4) 1월 16일, 慶尙道觀察使가 安東大都護府使에게 柳台佐의 장례를 보조할 제반 사항을 지시한 내용의 關
내용 및 특징
1838년(憲宗 4) 1월 16일, 慶尙道觀察使가 安東大都護府使에게 柳台佐의 장례를 보조할 제반 사항을 지시한 내용의 關이다.
생전에 大谷山 墳山 권역 확보에 매진하였던 柳台佐(1763~1837)는 안동 하회 풍산 류씨 서애 찰방공파로서, 柳師春의 아들이다. 자는 士鉉, 호는 鶴棲이다. 정조의 명으로 ‘너는 나를 도우라’는 뜻으로 이(나 台)좌로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문과에 급제하여, 부여군수, 안변부사, 김해부사, 한성부우윤, 우승지,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도산서원 원장을 역임하면서 후진을 교육하였고, 蔡祭恭 신원상소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柳台佐가 죽은 일자는 1837년 11월 26일이고, 다음에 2월 7일에 이르러서 山所에 入葬하였다. 그의 山所는 醴泉郡 古縣面 倉里 앞에 있는 古峴山(白峴) 九月峰에 마련하였다. 이 關은 1838년 2월 入葬하는 예를 치룰 때, 慶尙道觀察使가 보낸 것이다. 한편, 류씨 문중은 같은 해 3월, 이 산의 권역을 확보하기 위해 完文을 요청하는 所志를 醴泉郡守에게 올렸다. 慶尙道觀察使가 보낸 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安東府 河回의 柳參判의 襄禮를 2월 7일에 醴泉郡 古峴山에서 지낸다고 한다. 卿宰의 喪을 행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이를 조문하는 의리에 따라 마땅히 이를 돌보아주어야 한다. 발인하는 일자에 앞서서 雜色軍과 官隸를 넉넉히 보내도록 하라. 상여를 내려놓는 곳에는 병풍과 장막을 정돈하여 대기시켜 놓도록 하라. 고개를 넘는 곳에서 상여를 지고 가는 꾼들은 부근 마을 주민을 보내어, 신경 써서 喪을 돌보도록 하라. 그리 따로 色吏를 정하여 본가에 보내서, 지휘에 따라서 일을 돕도록 하라. 그리고 이와 같이 일을 진행하는 상황을 보고하라.】
그리고 이 關은 안동에 있는 安郊驛을 통해 전해졌는데, 입직하는 자에게 급히 전달할 것을 아울러 지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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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