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66년 김두흠(金斗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F.1866.1100-20100731.001525700465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두흠, 김낙주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66
형태사항 크기: 25 X 56.5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허백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66년 김두흠(金斗欽) 서간(書簡)
서울에 체류하던 김두흠이 1866년 3월 11일에 고향집의 큰 아들 김낙주에게 보낸 편지이다. 회아는 김낙중을 말하는데, 그도 함께 보라고 한 것은 주아가 길을 떠날 계획이 있어서 혹시라도 편지의 내용이 전달되지 않을까하는 염려했기 때문이다. 편지의 내용은 가족의 안부를 묻는 부분과 서울에 체류하고 있는 목적 및 소식, 그리고 당부의 일로 되어 있다. 고종 임금이 민승호의 여동생을 맞아들였다는 소식과 이 때문에 하회의 유후조가 청에 주청사로 다녀오게 되었다는 서울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민승호의 여동생은 명성황후를 말한다. 추신이 추가되어 있는데, 동생[묘군]의 편지를 받았으나 바빠서 답장은 다음에 쓰겠다고 전해달라는 내용이다.
정명수

상세정보

1866년 3월 11일에 서울에 있던 김두흠이 고향 집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구성 및 내용]
이 편지는 가족 사이에 주고받은 것으로 통상적인 편지의 격식을 좇지 않았고, 안부를 묻는 경우에만 일정한 형식을 좇았을 뿐이다. 편지의 구성은 크게 가족의 안부를 묻는 부분과 서울에서 자신이 들을 소식을 전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록이 추가되어 있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부분에서는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나이의 순서에 따라 손자들의 안부까지 세세하게 묻는다. 이미 여러 차례의 편지의 왕래가 있었는지 어머니께서 앓고 있던 회증의 증세는 어떠한지, 자식들이 앓고 있었던 마마와 종기는 증세가 어떠한지 하나하나 챙겨가며 확인하듯 묻고 있다. 서울의 소식을 전하는 부분에서는, 우선 자신이 서울에 체류하고 있는 목적인 가자(加資)에는 공론은 있지만, 명을 기다릴 뿐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과거의 소식을 존하고 있는데, 애초에 정과(庭科)가 21일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가례로 인해 26일로 변경되었고, 가혼의 대상은 승지 민승호의 여동생으로 정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당시 우의정이었던 유후조(柳厚祚)주청사에 가게 된 것과, 연로함에도 만리길의 고역을 치루게 되어 매우 안쓰럽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유후조에게 개인적인 안스러움을 표현한 것은, 풍산 유씨 집안과 증조․조부대에 혼맥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녀를 하회북촌댁으로 불리는 유도성에게 시집보냈기 때문이다. 편지의 끝 부분에는 촌에서 어느 누가 과거 시험을 보는 지 묻고 있는데, 이것은 편지로 회신을 요구하는 듯하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편지는 일반적인 회문의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시작되는 부분도 여백없이 처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만 추록을 편지의 처음부분에 기록하고 있다.
『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주아는 큰 아들 김낙주이고, 회아는 차남 김낙중을 말한다. 이 편지에서 말하는 가례는, 고종 임금이 민승호의 여동생을 맞아들인 것을 말하며, 바로 명성황후(1851~1895)이다.
『풍산김씨 오미동』, 김재억, 2003, 교육사
『풍산김씨세보』, 풍산김씨중앙종친회, 1990, 회상사
정명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6년 김두흠(金斗欽) 서간(書簡)

答周兒書會兒見之
晝宵戀鬱之餘壽洞金興祿雇
人來傳汝書披讀未半且驚且喜
罔知攸措仍知
慈主蛔症雖承於向減之後客地驚
慮實難定情未委其間快臻復常
之境慶孫順經痘憂慶莫大焉奇
幸奇幸而元也腫後始痛云矣近已釋慮
其他運也甲元諸兒次第就怛大小家
各房諸節長弟一安否懸念不已父
旅苦轉益難堪已極憐歎加資事
果有公論而尙無的窠所帶姑未可必
也惟付之司命者處分而已汝行果以初
七日登程耶若爾則此書似不及見矣
此漢處肆拾緡爲先受置後標記
書給爲可庭科以嘉禮在今卄一日退
定于卄六日科儒資斧狼狽者多矣可
聞大婚定于閔承旨升鎬妹氏矣
右閤丈以奏請使來月初九日拜表發
行老人萬里之役令人代悶耳村內
科儒誰某赴試也餘此漢臨發立促
不能長言蹔此不具
丙寅三月十一日父
卯君書忙未付荅當俟後便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