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4월 3일에 정동첨(鄭東{玉+詹})이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에 보낸 편지
[구성 및 내용]
일반적인 편지의 형식을 좇아 안부 인사와 최근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의 내용은 봄에 하인을 통해 편지를 받았으나 돌림병이 돌아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과, 자신의 노쇠하여 노망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집 아이들과 중자부도 병고 없이 지내고 있다는 것, 상대방에게는 조카가 되고 자신에게는 사돈이 되는 분이 사직 상소를 올렸다는 것, 지난번에 신곡에 갔을 때 당신의 아들을 만나서 한 번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것 등이 기술되어 있다. 집의 아이들과 중자부의 근황을 굳이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자부가 설월당 문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내용이 짧아서 회문의 형태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착명하였다.
『척약재집』의 행장에 의하면 정동첨은 한강 정구의 후손으로, 부친은 정홍제(鄭弘濟)이고 어머니는 풍산 홍씨 중현(重鉉)의 딸이다. 초명은 동필(東珌), 자는 유휘(幼輝)이다.
『척약재선생문집』, 정동첨,
정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