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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정동첨(鄭東{玉+詹})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F.1799.4784-20100731.00282570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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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동첨
작성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작성시기 1799
형태사항 크기: 22.6 X 37.2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799년 정동첨(鄭東{玉+詹}) 서간(書簡)
한강 정구의 5대손인 척약재 정동첨이 동년배 정도로 추측되는 광산 김씨 설월당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형식은 일반적인 격식을 좇았으며 추신이 있다. 편지의 내용은 서로간의 안부를 묻는 것과 장씨 성을 가진 생질의 원통한 죽음, 소천의 변고, 계촌과 의인의 상 등이 언급되어 있다.
정명수

상세정보

1799년 5월 21일에 정동첨(鄭東{玉+詹})이 설월당 종가에 보낸 편지
[구성 및 내용]
일반적인 편지의 형식을 좇았으며, 안부와 근황을 묻는 본문과 추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서로간의 근황과 안부를 묻는 것이다. 다만 장씨 성을 가진 생질의 원통한 죽음과 소천의 변상, 그리고 추록에 언급된 계촌의인의 상 등 변고에 관한 내용이 많이 보인다. 또한 발급자가 최근에 강동에 다녀왔던 기록도 보인다. 이 편지의 수취인은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의 족보에 의하면 김시찬인 것으로 보인다. 편지의 발급인은 당시에 66세였고, 수취인이 김시찬이라면, 편지에서의 표현, 즉 ‘함께 늙어 간다’는 것은 겸양의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전형적인 회문형식을 취했다. 처음 내용을 쓰고, 반시계방향으로 90도를 돌린 뒤에 중앙부터 아래로 써 내려갔다. 그 후 다시 90도를 돌려 짧게 아래로 내려쓰는 형식을 취했다. 나머지 내용은 편지의 첫 부분, 즉 피봉의 넓이만큼 비워두었던 곳에 기록했다.
『척약재집』, 정동첨,
정명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9년 정동첨(鄭東{玉+詹}) 서간(書簡)

春間經劫之後想慕老伴倍切
而便濶且衰慵闕然若相忘第自
歉悵卽拜
先施惠牘披復累回殆忘山川之脩
敻謹審向時愆節平復
靜候加衛區區曷任仰慰之至但神
氣之漸不如前乃吾輩通患直當
付之無如何而已矣弟粗得遣免而
自哭張甥寃喪世念益索然蓋
是衰年情弱之致自憐也已頃爲弔
哭作江東行到底物色便同鶴返
擾攘而雲林翁之作古好人云遠尤切
傷慟 畢竟同歸凘盡特早晩事而多
少人情掃除不得奇何
令咸査友牽復之恩亦云晩矣
前日之不赴今日之趨肅皆義也豈有一
向浚巡之理乎旅食艱苦初宦所不免
是爲貢念仲婦今爲九朔雖無形見委頓之
病少少不健時居多堇負又値極熱時節憂
念夙宵未弛也韶川變喪想來乃翁情地
尤令人氣短
餘匪遠書
可悉惟願
益自葆重
不備伏惟
下照 謹拜謝上狀
己未午月卄一日 弟鄭東{玉+詹}
溪村宜仁
老人之喪俱
係悼念聖哉
於輪症幾殊
堇甦而今月初
又喪耦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