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예안현에 사는 김시찬이 가족원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문서
[내용 및 특징]
1780년(正祖 4)에 禮安縣邑內面月峴里 1戶에 사는 金是瓚이 예안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조부 金紘이 이 해에 죽자 조부가 올린 호구단자와는 별도로 김시찬 자신을 중심으로 호구단자를 다시 작성하여 관에 올린 것이다. 김시찬의 부친인 金聖翼은 당시 죽고 없었기 때문에 손자인 김시찬이 올리게 되었다. 김시찬의 당시 나이는 27세이고, 본관은 光州이며, 幼學의 신분이다. 이 문서에는 작성 시기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1813년에 예안현에서 발급해 준 立案을 통해 1780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주지는 관에서 朱墨으로 길게 줄을 그어 표시하고 붉은 색으로 戶番을 써넣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 위에는 붉은 점을 찍어 표시하였다. 호구단자의 거주지 기재는 호주가 호구단자를 제출하면 五家作統에 의해 정해진 각 가호의 통호번을 朱墨이나 黑墨으로 기입해 주는 것이 원칙적인 방법이지만 호주가 호구단자를 작성하면서 직접 기입해 제출하거나 통호를 비워두는 경우도 있었다. 통호 기재 방식은 1675년에 반포된 「五家作統事目」에 따른 것으로, 오가작통이란 조선시대 다섯 집을 한 統으로 묶은 행정자치조직을 말한다.
김시찬의 가족으로는 조모 淑夫人李氏(73세), 모 李氏(47세), 처 鄭氏(25세)가 있다. 김시찬의 부는 聖翼, 조부는 紘, 증조부는 尙晉, 외조부는 李世德이며, 처 정씨의 부는 章簡, 조부는 玉, 증조부는 碩濟, 외조부는 李之億이다. 조모인 숙부인 이씨는 김시찬의 조부가 당상관인 折衝將軍의 품계를 지녔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정3품 外命婦 품계를 받은 것이다. 사조는 관직과 함께 외조부이면 그 본관까지 밝히고, 조모, 모, 처에 대해서도 본관을 밝히고 있어 집안의 관직 내력과 혼인 관계를 알 수 있다.
각 가족 구성원은 별행으로 列書하였는데 이는 17세기 이후 대체적인 호구단자의 특징이다. 사조 이하로는 문서가 잘려나가 실제 이 집안에서 소유한 노비규모를 정확한 알 수 없지만, 김굉이 동년에 올린 호구단자를 통해 거느리고 있던 노비가 어느 정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서 역시 일부가 잘려나가 실제 규모를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로부터 33년 뒤인 1813년에 김시찬이 예안현으로부터 발급받은 立案에는 1810년 당시 소유 노비의 수가 35구로 나타나 있다.
호구단자는 국가에서 戶口臺帳을 3년마다 改修하기 위하여 各戶에서 호구상황을 적어 3년에 한차례 제출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 기재사항은 각호의 주소, 戶首의 직업·성명·생년·본관·四祖, 그 처의 성명·생년·본관·四祖, 率居子女의 성명·생년, 노비와 雇工의 성명·생년 등이다. 戶主가 호구단자 2부를 작성하여 올리면 里任․面任의 검사를 거쳐 州郡에 보내지고, 주군에서는 구 대장 또는 관계서류를 대조하여 誤錯여부를 확인한다. 이후 1부는 단자를 제출한 호주에게 환부하여 각 집안에 보관케 하고, 1부는 장적을 개수하는데 자료로 이용한다. 이 문서는 관에서 확인한 후 호주에게 돌려준 단자라 볼 수 있다. 관에서는 김시찬 처의 본관을 淸州에서 西原으로 고쳐 주묵으로 썼으며, 이 문서를 확인․대조하였음을 알 수 있는 “准”를 문서 하단 여백에 써서 김시찬에게 돌려주었다.
[자료적 가치]
호구단자는 호적제도를 정비하여 호구파악을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3년마다 작성되었으며, 여기에는 호주 및 처의 사조와 솔거자식 및 소유노비 현황을 자세하게 등재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이들 문서를 통해 각 호구의 가족원과 관직 내력 및 혼맥, 소유노비수와 노비의 내력 및 노비 이동 경로, 그 지역내에서의 위상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김시찬은 김부륜의 후손이다. 김부륜에게는 아들 김령이 있고, 김령은 아들 김요형이 있다. 김요형은 넷째 동생인 김휘세의 아들 김석창으로 대를 이었다. 김석창도 아들이 없어서 김휘세의 손자 김상진으로 대를 이었다. 김상진에게는 김굉과 김적 두 아들이 있다. 김굉은 동생의 아들 김성익을 후사로 삼았다. 김성익은 아들 김시찬과 김시권을 낳았고, 딸은 이병운에게 시집갔다. 김시권은 김태익의 양자로 보내져 후사를 이었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崔承熙, 『奎章閣』7, 서울대학교 도서관, 1983
문숙자, 『藏書閣』 2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文現妵, 韓國學中央硏究院 碩士學位論文, 2009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