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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문국현(文國鉉)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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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문국현, 김인섭
작성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
작성시기 1894
형태사항 크기: 22 X 4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산청 단계 상산김씨 김인섭후손가 /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1894년 문국현(文國鉉) 서간(書簡)
1894년 11월 11일, 문국현(文國鉉)김인섭(金麟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국가의 우환을 없앨 수 없음을 한탄하고 고금 천하에 요(妖)는 덕(德)을 이길 수 없고 사(邪)는 정(正)을 이길 수 없는데 지금은 이단이 들고 일어나고 사문(斯文)이 사라지는 상황임을 말하고 사도(斯道)를 걱정하는 내용이다.
『慶南文化硏究』24집, 이상필, 경남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류지훈,심수철

상세정보

1894년 11월 11일, 문국현이 국가의 우환을 걱정하면서 이단이 들고 일어나 사문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사도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김인섭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94년 11월 11일, 文國鉉金麟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 서로 소식이 없었는데, 지난번 警衆씨 편에 자신을 오라는 말씀을 받았는데도 문후 편지도 하지 못하여 지금까지도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상대방과 자제들의 안부를 물었다. 흉년에 난리까지 겹쳐서 삶을 도모할 길이 없는 자신의 좋지 못한 상황을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못한다.’는 논어 구절을 인용하여 피력하였다. 그리고 국가의 우환을 없앨 수 없음을 한탄하고 고금 천하에 妖는 德을 이길 수 없고 邪는 正을 이길 수 없는데 지금은 이단이 들고 일어나고 斯文이 사라지는 상황임을 말하고 斯道를 걱정하는 내용이다. 추신으로 文竹杖 두 개를 族姪편에 보내드린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피봉이 있고 별지 2장이 있다.
자료적 가치
간찰자료는 조선시대의 고문서 가운데 양적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미진한 상태이다. 간찰 자료는 주로 안부와 건강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런 내용들 대부분은 주고받는 사람 상호간에만 이해될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이거나 이야기 되는 사건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편지글의 자료적 가치는 바로 이 내밀성과 일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간찰자료는 그 자체의 형식과 용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사 혹은 일상생활사, 심성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정사나 일반적인 사료에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미묘한 생각이나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간찰은 상호간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주고받거나 학문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학문적인 교류나 토론을 위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학문적인 토론이나 주장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전달되며, 후대에 문집에 수록되거나 별도의 서책으로 편집되어 개인의 중요한 저술로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이 문서에서는 1894년은 갑오경장이 일어난 해로 여러 가지 나라의 어지러운 상황을 본 편지에서도 읽을 수 있으며, 고금 천하에 妖는 德을 이길 수 없고 邪는 正을 이길 수 없다면서 유가의 正理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유자의 시각을 볼 수 있고, 이단이 들고 일어나고 斯文이 사라지는 상황인데도 어쩔 수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애환을 본 간찰을 통해 느낄 수 있다.
『慶南文化硏究』24집, 이상필, 경남문화연구소 2003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이상필, 와우[예맥커뮤니케이션] 2005
류지훈,심수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4년 문국현(文國鉉) 서간(書簡)

[피봉]
丹溪獻納將命者 開坼
冠坊 文生謹候書

[본문]
夏秋交寂無聞 頃於警衆氏之枉 伏承來汝之
敎 亞於陪討 便忙未修候幅 至今惶恐于中
伏不審至寒
經體候以時萬康 允兄昆季穩侍 做阿
那事業 竝爲伏慕之至 生 挽近經過 不浮
而自浮 當此凶荒 兼之以亂離 圖活無路 豈
敢怨天而尤人 知是我生不辰 然而亦倫理
中物 常多家國之憂 除抑不得 古今天下
妖不勝德 邪不勝正 而異學倡起 斯文陽九
此何變故 無人扶正息妖者 吾黨讀書人士
何如是無功於世乎 中夜撫枕 肌膚生栗
伏念 座下 志節之高 學力之實 出於人遠
矣 其何堪居 溘然無聞 能道人腹中事 切
欲高飛遠走 而無其地 奈何 吾夫子乘桴之
歎 良以此也 宿營一謁 而道途阻絶 且衣裳
不古 自獄於東海上 大嶺南 豈吾儒所爲哉 下
托文竹杖二箇 求置已久 偶得族侄便 使之仰
呈 恨未爲 瀟湘鬪品 倘不見棄耶 餘
不備候禮
甲午十一月 十一日 生 文國鉉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