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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별지(別紙).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A01+KSM-XF.1865.0000-20090831.E47840287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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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남희중, 이원조
작성시기 1865
형태사항 크기: 24 X 5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1865년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별지(別紙).
2월에 출급(出給)한 계해년(1863) 대동미 상납조(上納條)를 훔쳐 먹은 간악한 아전, 공금을 갈취하고 도망간 서원(書員)에 대해 분개하고 이들을 강력하게 처분해야 한다고 하며, 또한 모자란 세금을 복주(卜主)에게 환징(還徵)해야 하니, 좋은 방책을 일러달라는 내용.
「凝窩先生年譜」,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조선후기 지방재정연구』, 장동표, 국학지료원, 2007
KSAC+A01+KSM-XF.1865.0000-20090831.E47840287_0-DES.INF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상세정보

1865년(고종2) 4월 28일, 시생(侍生) 남희중(南羲重)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공납(公納)을 갈취한 간사한 아전과 서원(書員)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이들을 중형(重刑)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하고,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별지(別紙).
내용 및 특징
1865년(고종2) 4월 28일, 시생(侍生) 남희중(南羲重, 1803~?)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별지이다. 남희중은 2월에 출급(出給)한 계해년(1863) 대동미 상납조(上納條)를 해당 색리(色吏) 배봉래(裴鳳來)가 300여 냥을 훔쳐 먹고 지금까지 감추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돈은 다른 것과 매우 달라서 감영(監營)에 보고해서 형벌을 가해 유배(流配)시키고, 그 아버지를 형틀에 씌워 수감해야 한다고 분개 하였다. 이 밖에 배사곤(裴士坤)이시헌(李時憲)이 공금(公金)을 갈취해서 도망가고, 이종익(李宗益)김형호(金亨浩)방결(防結)을 무릅써 범하고 달아났으니, 이런 놈들은 죄과(罪科)를 저지른 수괴(首魁)들이라고 전한다. 또 서원(書員)들이 허위(虛僞)로 정하여 간악한 짓을 하고서 피해 버린 자들은 손가락으로 이루 다 꼽을 수가 없다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는 상하에 납부해야 할 것을 채워서 납부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으로 복주(卜主)에게 환징(還徵)해야 하는데, 아마 소란스러울 염려가 있으니 근심스럽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고 다른 좋은 방책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하며 끝을 맺었다.
자료적 가치
조선 후기는 수령과 아전들의 조세 포탈과 농민 수탈 때문에 농민의 생활이 매우 곤궁하고, 이에 따른 불만이 매우 고조되었다. 이 시기에 농민 중에 유민이 되거나, 혹은 화적이 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이는 결국 농민봉기로까지 이어져 조선의 체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 별지에서는 탐학(貪虐)한 아전들의 실상이 적 날 하게 기록되었다. 성주목사남희중은 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중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분개하였다. 한편으로, 이러한 손실이 결국 백성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갈까 전전긍긍하였다. 이 간찰을 통해 조선후기 성주지방의 환곡(還穀)의 실태와 탐학한 아전의 실상,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전전긍긍하는 목민관의 애민 의식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凝窩先生年譜」, 이원조, 『凝窩全集』, 여강출판사, 1986
『조선후기 지방재정연구』, 장동표, 국학지료원, 2007
1차 집필자: 황동권 , 2차 집필자 : 김상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5년 남희중(南羲重)이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별지(別紙).

[별지]
奸吏輩之乾沒公納 已成伎
倆 逐朔捐廩 究其源 卽無非
侵報吏腹中物 而二月出給癸
亥大同上納條 該色裴鳳來
偸食三百餘兩 至今掩匿 豈
有如許吏習乎 此錢 與他逈別
不可自邑懲治而止 期欲報營刑
枷囚其父 首校尙不就捉 不
勝憤菀 其外 裴士坤 李時憲
乾沒公貨而逃 李宗益 金亨
冒犯防結而去 此卽罪魁也
書員輩之虛卜作奸而避者
指不勝摟 走爲上策 指徵無處
今年新結 又襲前弊 此將奈何
上下納 不得不充納 故還徵卜主 而
恐有騷擾之慮 伏用憂悶 而依與
受同罪之律 民亦不無和應之責
雖寃徵 誰怨誰尤耶 不此之爲
若有好箇方略 卽隨事指敎
切仰切仰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