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은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교육‧교화 및 공론 형성의 중심지이자, 출판과 도서관 역할을 수행한 종합적 문화를 지닌 상징적 장소이다. 서원은 사묘에 부속된 독서처로서 관학의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는 정도로 인식되던 것이 퇴계에 의하여 사림의 강학, 장수처(藏修處)로서 그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이후 사림세력의 성장과 더불어 향촌활동의 중요한 기반으로 활용하면서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외에도 다양하고 많은 장서를 갖추어서 유생들의 교육용 교재로 활용하거나 내원한 인사들이 열람 및 대출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제향인의 문집과 저서, 경서(經書) 등의 간행을 통해 지방 인쇄 문화를 선도하고 지식을 보급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향촌 사림의 여론을 수렴하는 일차적 거점으로서 공론에 의한 붕당정치 실현의 기반이었다. 이외에도 사림간의 결속 강화와 각종 사회 문제의 협의를 위한 향촌기구로서 기능 하였다. 그러나 18세기 이래로 서원 건립과 운영을 둘러싼 각종 폐단이 누적되어 19세기 말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47개 원사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다.
여기에서는 경주 옥산서원을 중심으로 현풍 도동서원, 상주 옥동서원, 고령 노강서원 등의 자료를 차례로 소개한다. 옥산·도동·옥동서원은 대원군 당시 미훼철된 곳으로 많은 자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노강서원은 성주·고령일대를 대표하는 노론계 서원으로 다양한 자료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