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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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조선시대 비안향교가 위치했던 비안현(比安縣)은 아화옥현(阿火屋縣) 또는 병옥(幷屋)이라 불리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비옥현(比屋縣)으로 고쳐졌으며,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인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조에 접어들어서 상주(尙州)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안정현(安貞縣)에 병합되면서, 안정현에 파견된 감무(監務)가 다스렸다. 조선전기 지방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비옥현과 안정현은 통합되었는데, 1421년(세종 3) 안비현이 되었다가, 1423년(세종 5) 비옥현으로 읍치(邑治)가 옮겨지면서 비안현으로 개칭되었으며, 비안현은 1914년 의성군(義城郡)에 편입되었다.
비안향교의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조선전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비현이 성립되던 1421년 또는 비안현이 성립되던 1423년 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비안향교 건물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는데, 이때 향교의 위패는 비안의 백성 손복(孫福)이 산중의 굴로 옮긴 덕분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란이 끝나고 5년간의 준비 끝에 1608년(선조 41) 중건(重建)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1610년(광해군 2)에 완공되었다. 1737년(영조 13)경 비안향교는 읍치 북쪽 15리 지점으로 이건(移建)되었으며, 1887년(고종 24)에는 화재로 소실된 명륜당이 중건되었다. 1983년에는 명륜당과 외삼문을 중수하였다.
한편, 비안향교는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3호로 지정되었다.

자료소개

(1) 청금록(靑衿錄)·유안(儒案)·동몽안류(童蒙案類)
청금록은 3책, 유안 5책, 동몽안 1책이 전한다. 청금록 3책은 모두 18세기 전반에 작성된 것이다. 유안은 17세기 후반의 것으로 이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1664년에 작성되었다. 청금록과는 달리 액내(額內)·액외(額外)의 구분이 있다. 가장 후대인 1767년의 유안은 수록자 모두가 동재유생(東齋儒生)이다. 청금록과 유안을 통해 17~18세기 비안향교의 인적 구성과 사회적 기반을 살펴 볼 수 있다. 동몽안은 1683년에 작성되었으며, 역시 액내·액외 구분이 있다.

(2) 유계안(儒契案)
1884~1887년 사이 비안향교 활성화를 위해 운영되었던 유계의 계원 명부이다. 모두 6개의 좌목(座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3) 도유사안(都有司案)·장의안류(掌議案類)
도유사안 1책, 도유사행임록(都有司行任錄) 3책, 장의안(掌議案) 3책, 장의행임록(掌議行任錄) 2책, 일재유사안(一齋有司案) 1책이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사이에 편찬된 비안향교의 역대 교임(校任) 명부다. 비안향교 교임 중 수임(首任)인 도유사, 부임(副任)인 장의 명부가 수록되어 있어, 비안향교의 조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운영을 주도한 세력을 살펴 볼 수 있다.

(4) 향안류(鄕案類)
비안향교에는 향안 6책이 전한다. 향안은 17~18세기 작성된 것이나, 좌목에 수록된 인물은 16세기 향원(鄕員)부터 확인된다. 유향소(留鄕所)·향청(鄕廳)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비안현 지역 재지사족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5) 좌수행임록(座首行任錄)·별감행임안류(別監行任案類)
유향소·향청의 향임(鄕任)인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의 명부다. 1599년의 좌수안(座首案), 1683~1831년의 향임록(鄕任錄)[좌수], 1861년의 좌수행임록(座首行任錄), 1886년의 좌수임록(座首任錄), 1683~1831년 향임록(鄕任錄)[별감], 1855년의 별감행임록(別監行任錄)이 있다.

(6) 향약류(鄕約類)
향약의 규약을 수록한 1891년의 향약의식(鄕約儀式), 1894년의 향약계안(鄕約稧案), 1894년의 향약시첩(鄕約詩帖), 1891년의 향리약법(鄕里約法)이 있다. 19세기 후반 비안현에서 실시된 향약의 동향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7) 향교토지(鄕校土地)·재산류(財産類)
조선후기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비안향교의 대략적인 재정상황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향교토지소작료수납부(鄕校土地小作料收納簿)·향교재산대장(鄕校財産臺帳)·향교대장(鄕校臺帳)·토지대장(土地臺帳)·향교서책기구인계목록(鄕校書冊器具引繼目錄)·향청신구기물도안(鄕校新舊器物都案)이 있다.

건축물과 배치

비안향교는 동쪽 높은 대지에 대성전을 세우고, 그 아래 명륜당을 위치시킨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다. 대성전 앞에서는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명륜당 내부에는 다수의 현판이 게시되어 있다. 그런데 비안향교에는 유생·교생이 기거(寄居)하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없다. 동재와 서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록이 전하지 않아, 처음부터 건립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누각으로 1716년 건립된 광풍루(光風樓)가 있는데, 원래 이름은 강궤루(降軌樓)였다. 1985년 개축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