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김씨 지촌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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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의성김씨 지촌종가(芝村宗家)는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 위치하며,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1978년 임하댐이 세워지면서 원래 위치에서 200m 올라간 마을 뒷산에 새로운 마을을 조성했는데, 지례예술촌이다.

세거 과정

의성김씨는 문소김씨 또는 내앞김씨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석(金錫)을 시조로 하는데, 그가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짐에 따라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고려 말 공조전서 김거두(金居斗)가 외향의 연고가 있는 안동 풍산현에 거주했고, 그의 현손 김만근(金萬謹)이 14세기 말 임하면 천전리[내앞]에 정착하였다. 손자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의 아들 5형제가 모두 입신하게 되면서 각각 약봉파[약봉 김극일], 귀봉파[귀봉 김수일], 운암파[운암 김명일], 학봉파[학봉 김성일], 남악파[남악 김복일]을 형성하였다. 그 가운데 약봉파는 극일→철(澈)→시온(是榲)으로 이어지는데 김시온이 병자호란 이후 스스로를 숭정처사라 하고 청에 대한 저항의식을 실천하기 위해 지례의 도연폭포 옆에 와룡초당을 짓고 은거하였다. 넷째 방걸의 자손은 그의 호를 따라 ‘지촌파(’라고 했으며 이곳에 세거하였다.

가계와 인물

의성김씨 지촌파는 방걸→세중(世重, 1648~1716)→여흠(汝欽, 1674~1712)→광한(光漢)→시택(始宅)→이운(利運)→계수(啓壽)→정진(廷鎭)→종락(宗洛)→홍식(弘植)→두환(斗煥)→시윤(時潤)→구직(九稷)→원길(源吉)로 이어진다.
파시조 김방걸은 1660년(현종 1) 문과에 급제하여 1675년(숙종 1) 지평, 이듬해 정언을 거쳐 장령이 되어 이서(吏胥)들의 방납(防納)으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를 상소하였다. 그 뒤 부수찬과 수찬 등을 지냈으며, 1689년(숙종 15) 사간이 되었으나, 그해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가 폐위되자 간관(諫官)으로 왕의 과오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데 책임을 느껴 낙향하였다. 이후 다시 승지, 대사간,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김방걸의 후손 역시 퇴계학을 가학으로 계승하였으며, 안동 사족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명문의 위상을 지켜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