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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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정의와 분류

고신(告身)은 고려조부터 조선말까지 관리에게 품계나 관직을 수여하면서 발급하는 임명장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고신은 수여하는 품계에 따라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 두 종류가 있었다.
‘4품 이상 고신’은 국왕이 바로 임명하는 1~4품의 품계나 관직을 수여하는 임명장으로 통상적으로 ‘교지(敎旨)’ 또는 ‘관교(官敎)’로 부른다. ‘교지(敎旨)’는 문서의 첫 머리에 국왕의 명령을 의미하는 ‘敎旨’라는 글자를 적는 문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관직 및 품계 이외에도 시호, 토지, 노비, 특권 등을 내리는 종류의 교지도 존재한다. 관직을 내리는 교지는 임명교지(任命敎旨)라고 한다. 조선시대 임명교지에는 ‘문무관 4품 이상 고신’, ‘당상관 처 고신’, ‘추증교지’ 세 종류가 있다. ‘문무관 4품 이상 고신’은 관료에게 문무관의 품계나 관직을 내리는 임명장이고, ‘당상관 처 고신’은 당상관의 본처에게 남편의 관직에 따라 외명부 봉작을 내리는 임명장이며, ‘추증교지’는 죽은 사람의 품계와 관직을 올려주는 임명장이다.
‘5품 이하 고신’은 대간의 서경을 거쳐서 임명하는 5~9품의 품계나 관직을 수여하는 임명장으로 통상적으로 ‘교첩(敎牒)’으로 부른다. 교첩은 국왕의 명령에 따라 이조나 병조가 발급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참고문헌】
유지영, 「조선시대 임명관련 敎旨의 문서형식」, 『고문서연구』30, 2007.
박재우, 「高麗時期의 告身과 官吏任用體系」, 󰡔韓國古代中世古文書硏究(下)󰡕,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정구복, 「조선조의 告身(辭令狀 검토」, 『고문서연구』9, 1996.
정구복, 「고문서 용어풀이 : 고신」, 『고문서연구』22, 2003.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증보판).

4품 이상 고신
1. 문서의 양식

위의 그림은 가경 25년(1820) 7월 16일 이원조를 통훈대부 행 사헌부 지평에 임명하는 임명교지이다. 임명교지의 문서 양식은 모두 위의 그림과 같이 ①~⑤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① 4품 이상 고신은 모두 ‘敎旨’로 시작한다. 이는 이 문서의 내용이 국왕의 명령임을 나타내며, 한 자 또는 두 자를 높여 쓴다. 고신에 ‘敎旨’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1435년(세종 17) 9월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王旨'라는 문구를 사용하였다.
②는 수취자를 표시하는 부분이다. 고신의 유형에 따라 수취자의 성명만 기재하거나, 수취자가 기존에 갖고 있는 품계와 관직명을 함께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
③은 수취자가 받은 품계 명칭 및 관직명을 표시하는 부분이다. ‘爲’는 ‘~로 삼는다’ 라는 뜻이다. 품계 명칭에 이어서 관직명을 적는데, 경우에 따라 품계 명칭만 기재되거나 관직명만 기재되기도 하였다. 수취자의 품계가 관직의 품계와 차이가 있을 때에는 행수법(行守法)을 적용하였다. 행수법(行守法)이란, 수취자가 갖고 있는 품계가 관직의 품계보다 높을 때[階高職卑]에는 ‘行’자를, 반대로 수취자의 품계가 관직의 품계보다 낮을 때[階卑職高]에는 ‘守’자를 관직명 앞에 기재하는 것이다.
④는 고신의 발급일자이다. 발급일자는 대부분 해당관직을 임명하기로 결정한 날(政事 일자)과 일치한다. 연도부분에는 중국의 연호가 사용되었다. 간지를 사용한 경우도 있는데, 병자호란 직후 5년간(1637년~1641년) 발급된 고신에 자주 나타난다. 그밖에 반청(反淸)에 앞장섰던 김상헌(金尙憲), 최진립(崔震立) 등의 추증 교지를 내릴 때에도 청의 연호가 아닌 간지를 사용하였고, 대명의리를 내세운 송시열(宋時烈), 윤행임(尹行恁) 등의 고신도 간지를 사용한 경우가 보인다.
⑤ 4품 이상 고신은 국왕이 발급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어보(御寶)를 찍는다. 현전하는 4품 이상 고신에는 대부분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안보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1493년(성종 24) 9월 이후부터 확정된 것이고, 국초에는 고신에 사용되는 어보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현전하는 고신과 실록을 통해 고신에 사용된 어보를 연도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고신의 발급일자 측면에는 작은 글자로 임명사유를 적어 놓은 경우가 있다. 문관직에 임명하는 고신은 연호 좌측에 기재하였고, 무관직에 임명하는 고신은 연호 우측에 기재하였다.
좌측의 그림은 함풍 6년(1856) 10월에 이원조에게 가선대부를 제수하는 임명교지이다. 연호 좌측에 ‘副摠管添書落點’이라고 임명사유가 적혀있다. 우측 그림은 건륭 40년(1775) 윤10월 안정복을 어모장군 행 익위사 익찬에 임명하는 임명교지이다. 연호 우측에 ‘仍任事承傳’이라고 임명사유가 적혀있다.
‘문무관 고신’은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임명사유를 기재하며, 대부분은 기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로 가자(加資)하거나 잉임(仍任)하여 발급한 경우에는 해당사유를 연호 옆에 작은 글자로 기재하였다. 즉 임기를 초과하여 해당 관직에 그대로 임명한 것임을 기재하거나, 무슨 공으로 가자되었는지를 나타내는 경우 등이다.
고신의 뒷면에는 다음 그림과 같이 종종 문서를 작성한 서리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가 있다.
위의 그림은 임명교지의 뒷면으로, 좌측 하단에 ‘吏吏 安至默’ 즉 ‘이조서리 안지묵’이라고 작성자의 직책과 성명이 기입되어 있다. 고신의 작성자를 기입하는 위치는 보통 배면의 좌측 하단인데,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작은 글씨로 기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표기 방식은 이리(吏吏 = 이조서리), 이조서리(吏曹書吏), 병정리(兵政吏) 등과 같이 직책과 이름을 적은 경우와 이름만을 적은 경우가 있다. 고신의 작성자 표기에는 동일 성씨와 인물이 일정기간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해당 서리가 한 가문의 단골서리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2. 4품 이상 고신의 종류

‘당상관 처 고신’이나 ‘추증교지’의 경우 봉작을 받고 관직에 추증되는 사유를 기재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이를 연호 옆에 작은 글자로 기재하였다. 즉 ‘당상관 처 고신’은 남편의 관직명과 함께 ‘법전에 의거해 지아비의 관직에 따른 것[依法典從夫職]’이라는 문구를 기재하고, ‘추증교지’는 ‘누구의 조상이기 때문에 법전에 의거해 추증을 받는 것[依法典追贈]’ 이라는 문구를 기재하는 것이다.
좌측의 그림은 도광 29년(1849) 윤4월에 숙부인 조씨를 정부인으로 삼는 ‘당관 처 고신’이다. 연호 좌측에 ‘通政大夫 守 慶州府尹 李源祚妻 依法典從夫職’, 즉 ‘통정대부 수 경주부윤 이원조의 처이므로 법전에 의거해 남편의 관직을 따름’이라고 임명의 근거를 기재하고 있다.
우측의 그림은 도광 29년(1849) 윤4월에 통덕랑 이민겸을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에 추증하는 추증교지이다. 연호좌측에 ‘通政大夫 守 慶州府尹 李源祚祖考 依法典追贈’ 즉 ‘통정대부 수 경주부윤 이원조의 조부이므로 법전에 의거해 추증함’이라고 추증의 근거를 기재하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위와 같이 추증이나 봉작을 내리는 근거가 발급일자 좌측에 작은 글씨로 기재 되었다. 한편 조선 전기에는 수취자를 기재하는 부분에 기재되었다.
위의 그림은 정덕 1년(1506) 10월 27일 이정을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하는 추증교지이다. 수취자 부분에 ‘奮義靖國功臣 嘉善大夫 靑海君 李堣祖考 中訓大夫 善山都護府使 李禎’, 즉 ‘분의정국공신 가의대부 청해군 이주의 조부인 중훈대부 선산도호부사 이정’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수취자 부분에 추증을 받는 근거가 명시되는 것이다.

5품 이하 고신

위의 그림은 가경 21년(1816) 1월에 승문원 부정자 이원조를 선교랑 행 승문원 정자에 임명하는 5품 이하 고신[교첩]이다. 5품 이하 고신의 문서 양식은 모두 위의 그림과 같이 ①~⑤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① 5품 이하의 문무관도 국왕의 명령에 의하여 임명된다. 그러나 고신(교첩)의 발급주체는 전선(銓選-인사행정)을 담당하는 관아인 이조 및 병조이다. 4품 이상 고신은 첫 머리에 ‘敎旨’라고 기재하고 바로 임명사항을 기재하지만, 5품 이하 고신은 담당관아가 임명장을 내리는 근거를 먼저 명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4품 이상 고신은 문서의 첫 머리에 ‘吏曹(兵曹)○年○月○日奉敎’ 즉 ‘이조(병조)가 모년 모월 모일에 국왕의 하교를 받들어’와 같이 발급관아와 국왕의 하교가 내려온 날을 기재한다. 여기서 ‘하교를 받든’ 일자는 대개 이조(병조)의 관원과 승정원 승지가 모여 진행하는 인사회의인 ‘정사(政事)’의 시행일자와 일치한다.
②는 수취자를 표시하는 부분이다. 고신의 유형에 따라 수취자의 성명만 기재하거나, 수취자가 기존에 갖고 있는 품계와 관직명을 함께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
③은 수취자가 받은 품계 명칭 및 관직명을 표시하는 부분이다. ‘爲’는 ‘~로 삼는다’ 라는 뜻이다. 품계 명칭에 이어서 관직명을 적는데, 경우에 따라 품계 명칭만 기재되거나 관직명만 기재되기도 하였다. 수취자의 품계가 관직의 품계와 차이가 있을 때에는 행수법(行守法)을 적용하였다. 행수법(行守法)이란, 수취자가 갖고 있는 품계가 관직의 품계보다 높을 때[階高職卑]에는 ‘行’자를, 반대로 수취자의 품계가 관직의 품계보다 낮을 때[階卑職高]에는 ‘守’자를 관직명 앞에 기재하는 것이다.
④는 고신의 발급일자이다. 연도부분에는 중국의 연호가 사용되었다. 4품 이하 고신 역시 발급 연도 표기에 간지를 사용한 경우도 있는데, 병자호란 직후 5년간(1637년~1641년) 발급된 교신에 자주 나타난다.
⑤⑥ 5품 이하 고신은 발급관아인 이조나 병조의 관인을 찍고, 좌측에 담당관원이 서압을 한다. 조선전기와 중기에는 당상관과 당하관 각각 최소 1명이 서압을 하였는데, 후기로 내려올수록 당상관 1명만 서압을 한 경우가 많다. 이는 조선후기 이조 낭청의 권한 축소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4품 이상 고신과 마찬가지로, 5품 이하 고신의 뒷면에도 좌측 하단에 작성자의 직책과 성명이 기입되어 있다. 고신의 작성자를 기입하는 위치는 보통 배면의 좌측 하단이 되는데,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작은 글씨로 기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표기 방식은 이리(吏吏 = 이조서리), 이조서리(吏曹書吏), 병정리(兵政吏) 등과 같이 직책과 이름을 적기도 하고 이름만을 적기도 한다. 고신의 작성자 표기에는 같은 성씨와 성명이 일정기간동안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해당 서리가 한 가문의 단골서리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