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옥원사실(玉院事實) 부잡실(附雜實) > 02권 > 1857년 > 5월 >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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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Y10+KSM-WM.1852.4713-20180630.Y18501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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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7년 윤 5월 9일 / 哲宗 8 / 丁巳
내 용

山雲이 景山을 거부하는 牌旨[丁巳(1857)年 윤 5월 9일] 한 달 전에 본 서원에서 配享할 때 나리가 주빈을 맡아 모임의 자리에서 참석하였습니다. 이때 본성에서 좋아하여 함께 받드는 정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웃끼리의 싸움이 있어 祠堂에 들어가는 예절이 끝내 정한 날에 거행되지 못했습니다. 당일 道儒가 이 일을 보았으나, 문을 닫고 입을 다물었으니 또한 그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정중한데 걸려 있고, 뜻이 조정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道儒가 孫氏를 잘 타이르고, 이어서 本孫에게도 사실을 밝히니, 차이가 없이 말을 내는 것이 모두 景山에 奉安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에 李氏가 보고 듣기에 어떤 장애가 있었겠습니까? 모임을 마친 저녁에 나리가 다른 곳을 향할 때 玉山書院의 사람들을 배알하고 나서, 東江書院의 사람들과 경모하고 우러르는 정성을 표하면서 차례대로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 林下里의 사람들이 牌旨를 던지며 꾸짖고 욕을 하였습니다. 이치에 배반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패악한 행동이 있는 것은 顚末을 따진다고 해도 체모를 잃는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치에 어그러지는 짓에 속임을 당해왔으나, 저 李氏들의 흉악하고 음흉함을 우리는 본디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우러러 사모함을 받으면, 곧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愚齋를 되돌아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나라의 先賢이며, 晦齋의 외삼촌이십니다. 그 명성과 지위, 그리고 학문은 역사의 기록에 분명하게 실려 있으니, 바로 우리 무리의 宗師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저 林下里의 外先祖가 되니, 저 李氏들은 마땅히 대대로 좋은 인척이 되도록 강구하고, 서로의 規約에 지나침이 있으면, 오랜 집안에서 전해져오는 풍속을 삼가 지키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도리어 여기에서 화난 것을 저기에 옮기니, 꾸물거리며 익힌 습속이 저절로 야비한 말이 되어 밖으로 드러납니다. 해변의 으슥한 벽지에 외따로 있는 것이 우물 안에 앉아 있는 것과 같으니, 단지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무릇 牌旨에 감추어진 말은 보잘 것 없어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냉랭하게 먹고 마시기만 한다는 등과 같은 말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스스로에 대해 한 말인 것 같습니다. 또 公共의 의론이 있으면, 先賢의 후예로 이미 열 세대를 지났으면, 그 사이에 가문을 훈훈하게 하고 일족을 따뜻하게 한 사람이 무릇 몇 사람이나 있을 것이니, 더욱 우습습니다. 또한 나리가 玉山書院에 들어는 가면, 玉山書院에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東江書院에도 함께 묵게 될 것입니다. 또 東江書院에서 보낸 음식이 있으면, 두 서원이 함께 이바지하는 것이니, 모두 의로운 음식이 아님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한갓 먹는 것으로 돌려버리면, 대대로 선현을 사모하여 서원을 찾는 사람은 장차 어찌 숙식을 한단 말입니까? 아, 저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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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山雲抵景山牌。
丁巳閏五月初九日
月前本院腏享時。進賜主委參會席。寔在於共尊彛好之誠。而適有鄕麟之鬪。入祠之禮  竟未得行之於定日。當日道儒之觀。此擧措者。就閉戶緘口。亦可也。而事係鄭重意在調停。故道儒 之開諭孫氏。繼發於本孫。無異同出說。而都在於景山之安奉。則有何碍於李氏之瞻聆也。罷會之夕   進賜主迤向他處。旣謁玉山次。拜東江以寓景仰之忱。而彼渠林下里之投牌詬辱。無倫背理。未知緣何事故。而有此悖擧也。揆以顚末。少無體貌之失。而謾受橫逆之來。彼李之凶險。我固知之矣。見人景慕。而便生猜疾之心者。尤不近理。顧念愚老。即我東之先賢也。晦翁之舅氏也。其名位問學。昭載史乘。非直爲吾黨之宗師也。抑亦爲渠林之外先。則爲渠李者。當世講戚好。有過相規。謹守古家遺風。可也。今反怒於甲而移於乙 蠢蠢習氣。自發於悖辭之外。僻在海隅。如坐井底多見。其不知量也。大抵屛牌之辭。不欲碌碌更提。而至如寒冷哺啜等語。似是自道之言。又有公共之論。先賢後裔。已過十世。則其間之爲薰門煖族者。凡有幾人。尤可笑歎。且進賜主之入於玉山也。自有玉山之供宿于東江也。又有江院之饋。二院饋供。俱非不義之食。而一任歸之於徒哺世之慕賢。而尋院者。將安所宿食乎。噫。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