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용 |
山雲이 景山을 거부하는 牌旨[丁巳(1857)年 윤 5월 9일]
한 달 전에 본 서원에서 配享할 때 나리가 주빈을 맡아 모임의 자리에서 참석하였습니다. 이때 본성에서 좋아하여 함께 받드는 정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웃끼리의 싸움이 있어 祠堂에 들어가는 예절이 끝내 정한 날에 거행되지 못했습니다. 당일 道儒가 이 일을 보았으나, 문을 닫고 입을 다물었으니 또한 그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정중한데 걸려 있고, 뜻이 조정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道儒가 孫氏를 잘 타이르고, 이어서 本孫에게도 사실을 밝히니, 차이가 없이 말을 내는 것이 모두 景山에 奉安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에 李氏가 보고 듣기에 어떤 장애가 있었겠습니까?
모임을 마친 저녁에 나리가 다른 곳을 향할 때 玉山書院의 사람들을 배알하고 나서, 東江書院의 사람들과 경모하고 우러르는 정성을 표하면서 차례대로 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 林下里의 사람들이 牌旨를 던지며 꾸짖고 욕을 하였습니다. 이치에 배반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패악한 행동이 있는 것은 顚末을 따진다고 해도 체모를 잃는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치에 어그러지는 짓에 속임을 당해왔으나, 저 李氏들의 흉악하고 음흉함을 우리는 본디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우러러 사모함을 받으면, 곧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愚齋를 되돌아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나라의 先賢이며, 晦齋의 외삼촌이십니다. 그 명성과 지위, 그리고 학문은 역사의 기록에 분명하게 실려 있으니, 바로 우리 무리의 宗師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저 林下里의 外先祖가 되니, 저 李氏들은 마땅히 대대로 좋은 인척이 되도록 강구하고, 서로의 規約에 지나침이 있으면, 오랜 집안에서 전해져오는 풍속을 삼가 지키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도리어 여기에서 화난 것을 저기에 옮기니, 꾸물거리며 익힌 습속이 저절로 야비한 말이 되어 밖으로 드러납니다. 해변의 으슥한 벽지에 외따로 있는 것이 우물 안에 앉아 있는 것과 같으니, 단지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무릇 牌旨에 감추어진 말은 보잘 것 없어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냉랭하게 먹고 마시기만 한다는 등과 같은 말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스스로에 대해 한 말인 것 같습니다. 또 公共의 의론이 있으면, 先賢의 후예로 이미 열 세대를 지났으면, 그 사이에 가문을 훈훈하게 하고 일족을 따뜻하게 한 사람이 무릇 몇 사람이나 있을 것이니, 더욱 우습습니다. 또한 나리가 玉山書院에 들어는 가면, 玉山書院에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東江書院에도 함께 묵게 될 것입니다. 또 東江書院에서 보낸 음식이 있으면, 두 서원이 함께 이바지하는 것이니, 모두 의로운 음식이 아님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한갓 먹는 것으로 돌려버리면, 대대로 선현을 사모하여 서원을 찾는 사람은 장차 어찌 숙식을 한단 말입니까? 아, 저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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