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옥원사실(玉院事實) 부잡실(附雜實) > 02권 > 1853년 > 2월 >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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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Y10+KSM-WM.1852.4713-20180630.Y18501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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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3년 2월 10일 / 哲宗 4 / 癸丑
날 씨 따뜻함
내 용

2월 10일
따뜻함
참석할 齋任과 여러 儒生들이 일제히 서원에 올라왔다. 官家의 행차에서 私通이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듣기로 저 무리들 중에 李綺壽李眞慣이 府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큰 변괴로 극히 난처한 조짐이 있으며, 관청의 행차를 막고 한편으로 저들의 편에서 큰 모임을 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날 申時에 관청의 행차가 서원에 도착했다. 亞獻官인 參奉 李博祥과 終獻官인 正言 崔斗錫이 이어서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앉자 서원에 있던 몇 사람이 관리를 보고는 물러나서 나갔다. 李眞安이 또 들어가 관리를 뵈니, 관리가 "조금 전에 松壇에 도착하니 5~6명의 儒生이 있었는데, 轎子를 잡고 길을 막더군. 선비의 습관이 감히 이와 같은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을의 新儒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모여서 들어온 사람이 많게는 수백 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李眞安李眞慣의 집안사람들이라고 했다. 鄕員들은 저들을 두려워하여 나타나지 못했는데, 도착한 사람은 3~4명에 지나지 않았다. 本孫은 60여 명이었다.
이날 저녁 무렵 공적인 일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曺司에 大邱 朴과 本孫 李在應, 公事員에 李在欽李在海를 추천하여 뽑고, 齋有司에는 李能洙를 우선 권점하고 선출하였다. 李眞安을 비롯한 李眞銓, 李眞慣의 무리들이 자리에 참석하여 큰 소리로 "이번에는 다른 대책이 있은 후에라야 무사할 수 있을 것이요."라고 말하며 더러운 입으로 공갈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뜻은 禮祝하는 首執事에 있으며, 그 해당자는 고을의 新儒인 辛天應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저 무리들이 末執事 한 자리를 방자하게 청하며 本官이 자리에 있는데도 떠들었다. 이 무리들의 무엄함이 이와 같았다. 公事員이 자리에 나온 후에 初獻官에게 執事版을 올렸다. 本官이 먼저 거기에 禮祝을 써서 따르고, 고하는 사람이 정조께서 敎示로 이끌어준 전례에 따른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장차 玉山 李氏를 하나의 執事로 쓸려하고, 本官의 뜻도 이와 같다면 참가시켜 쓸 수 있었다. 李眞安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이에 대해 말했다. 이 무리는 최근에 못된 행실을 부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비록 전례라고 하더라도 시행을 허락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本官의 뜻도 쓴 것을 어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判陳設에 李眞宷, 奉香에 李紀元이라고 쓰기를 마치고 執事板을 걸려고 할 때 李眞安의 무리가 다시 들어와 本官 앞에서 여러 말로 간절히 구했다. 그러나 本官은 곧 손님을 쫓아내는 것으로 그를 꾸짖으니, 감히 다시 방자하게 굴지 않았다. 저녁식사 후에 李紀元이 사직의 單子를 올렸다. 아마도 李眞安의 무리는 고을 新儒들을 끌어들여 선현의 서원에 변괴를 일으킨 부류이고, 반열을 함께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뜻일 것이다. 本官이 "저들 중에 또한 이러한 사람이 있는가? 의롭기는 하나 사임을 허락한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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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十日。
溫。
參齋諸儒。一齊上院。官家行次。私通先到。而聞彼輩李綺壽李眞慣入府。以爲今番。則將有大變怪極難處之端。沮尼官行。一邊通告渠邊以爲大會云
是日晡時。官行到院。亞獻官參奉李博祥。終獻官正言崔斗錫。繼到座定後。在院若而人見官退出。眞安仍又入見。則官曰。俄到松壇。有五六儒生。執轎子遮路。士習爲敢如是云。鄕新儒之後先聚入者。多至數三百。而皆在眞安眞慣家云。鄕員則畏彼。不能出見。到者。不過三四員。本孫爲六十餘員
是日向夕。設公事席。薦出曺司大邱朴。本孫李在應。公事員李在欽李在海。爲先圈出齋有司李能洙眞安眞銓眞慣輩。參座大言曰。今番則有別般區處然後。方可無事。醜口恐喝之。其意在於禮祝首執事。而鄕新儒辛天應云者。亦以渠輩末執事一窠。肆然請。聒本倅在座。而此輩之無嚴若是。公事員出座後。進執事版于初獻官。本倅之前書愼禮祝。謁者後依正廟朝延敎已例。將用玉李一執事官意以爲如是。則可參用。眞安輩一人爲言。此輩之近日作梗。雖已例有難許施。而官意難違書。李眞宷於判陳設。李紀元于奉香。書訖揭板之際。眞安輩復入。官前多般求恳。官家卽以廢客責之。不敢更肆。夕後李紀元呈辭單。盖以眞安輩。引入鄕新儒作變先院之類。而羞與同列之意也。官曰。彼中亦有如許人乎。義而許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