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옥원사실(玉院事實) 부잡실(附雜實) > 02권 > 1853년 > 1월 >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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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Y10+KSM-WM.1852.4713-20180630.Y18501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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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53년 1월 19일 / 哲宗 4 / 癸丑
내 용

1월 19일
새로 선임된 齋任과 이전의 齋任이 올린 所志
교화를 받은 백성 李澈民이 외람되이 보잘 것 없지만 황송하게도 玉山書院의 齋任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번 달 15일 이른 아침에 香禮를 드리려고 막 두건과 의복을 갖추고 祠堂에 들어가려고 할 때 新儒 수십 명이 은근히 빙 둘러앉게 하고는 관청의 판결문을 내어 보여주고는 官令을 받들어 교체한다고 하고는 소매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李眞銓을 任司로 임명한다고 한 후 둘러앉아 공갈하며 재계할 때 입는 옷을 벗기게 하였으나, 제가 끝내 벗으려 하지 않자 그 중의 한 사람이 앞장서서 소매를 잡고는 저들의 손으로 벗겨내었습니다. 저는 지치고 힘이 모자란 데다 죄스럽고 송구하여 스스로 도망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숨어서 허물을 자책하고 있는데, 듣자니 李眞銓의 진술서 안에 "공론이 이와 같아 부득불 재계할 때의 옷을 넘겨받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 저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만들어내고, 참으로 부당하고 조금도 근사하지 않는 말을 지어내는 것이 매번 이와 같습니다. 당일 舊儒로는 새로 선임된 齋任과 이전의 齋任 두 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한즉 공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백하여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건과 의복을 넘겨주었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제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이미 그 직무를 맡고 있고, 이미 그 의복을 입고 있으니, 중요한 곳에서 제사를 드릴 때 입는 의복을 어찌 스스로 벗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분변하지 않는다면, 저의 사정으로는 士林에 몸을 붙이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히 사실에 따라 우러러 호소합니다.
(새로 선임된 齋任의) 所志에 대한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저 무리들이 거짓으로 고한 것을 사람이라면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저들 역시 이미 자백하였으니, 그 허황된 말을 혐의쩍게 여길 것이 무엇이겠는가? 비록 사림이라고 하더라도 또한 어찌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런 어지러운 상소가 있으면 도리어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니, 신중히 하고 개의치 말라.
(이전의 齋任이 올린 所志) 교화를 받은 백성 李在潗입니다. 저는 바로 玉山書院의 이전 齋任으로 (신임에게) 전하여주려고 이번 15일에 서원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고을의 新儒들에게 협박을 당하여 차고 있던 열쇠를 그곳에서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수치스럽고 분해 죽고 싶었으나 늙고 졸렬하여 자책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니 李眞銓이 거짓으로 꾸며댄 진술서 안에 "재계할 때의 의복과 열쇠는 공론으로 전해주고 받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아, 李眞銓의 계략이 역시 궁색합니다. 재계할 때의 옷을 겁을 주어 빼앗은 것을 스스로 알며, 힘으로 열쇠를 빼앗은 범죄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치에도 닿지 않은 말을 지어내어 곧 스스로 그 죄를 가리고자 한 것입니다. 제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어찌 차마 저 무리들과 같이 관가에 거짓으로 속여 보고하고, 사사롭게 주고받은 것을 공론이라 말하고, 조급히 재계할 때의 옷과 열쇠를 넘겨주겠습니까? 새로운 任司를 붙잡고서 재계할 때의 옷을 벗겨내려고 한 사람은 孫時夏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것은 새로운 任司가 사실에 따라 분별하여 訴狀을 올린 것에 있습니다. 열쇠는 저의 옷 흠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방으로 에워싸고 앉아서는 어떤 사람은 공갈하고, 어떤 사람은 희롱하며 기만하여 풀어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의리로써 타이르고, 죽기를 작정하고 저항하여 주지 않을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했더니 孫世麟이 손수 저의 허리에 찬 주머니 속에서 찾아내어 마침내 풀어갔습니다. 그랬으니 당일 자리에 어찌 공론의 말이 있고, 공론의 일이 있었겠습니까? 저희가 무고를 당하더라도 참으로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은 마땅히 사실을 따른 이후에야 그래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감히 사유를 갖추어 우러러 호소합니다.
(이전의 齋任이 올린) 所志에 대한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저 무리들의 패악한 행동은 남김없이 꿰뚫어 알고 있다. 그러한즉 그들이 거짓으로 고한 것도 저절로 그 안에 있으니 어찌 급급해할만 한가? 혐의쩍게 여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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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九日。
呈新舊齋任所志
化民幼學李澈民。猥以無似。忝膺玉山書院齋任。今月十五日。早朝香謁次。方具巾服。進入之際。新儒數十人。勤令還坐。出示官題。稱以奉官令改差是白遣。袖出一丈紙。差出李眞銓爲任司後。環坐恐喝。使脫齋服。而民終不肯脫。則其中一人。直前執袖。自渠手解脫而去。民之疲劣罪悚。自無所逃。方惶蟄訟愆。卽伏聞李眞銓所招內。謂以公論如此。不得不讓與齋服云云。噫彼邊人之構虛捏無。做出千不當萬不近之說者。每每如是。當日舊儒。不過新舊齋任二人。則公論之說。不言自白。至於讓與巾服之說。民雖無似。旣在其任。旣着其服。則重地將事之服。豈可以自脫讓人乎。此而不卞。則民之情事。無所容身於士林之列。故玆敢從實仰訴
題曰。彼輩之誣告。人孰信之。而渠輩亦已自服。則其所荒說。何足爲嫌。雖士林中。亦豈有不知之理耶。有此紛疏。反涉昌披。愼勿介意宜當事
化民幼學李在潗。民卽玉山書院舊齋任也。以傳與次。今望日上院。而被他鄕新儒敺脅。所佩開金。卽地見奪。方羞憤欲死。疲劣自訟。而卽伏聞李眞銓誣招內。有曰。齋服開金。以公論傳受云。噫眞銓之計。亦窮矣。自知㥘奪齋服。力取開金之罪犯不輕。而做出無理之說。便欲自掩其罪者也。民雖無似。豈忍以渠輩瞞報官家。私自唱酬者。謂之公論。而遽以齋服開金讓與乎。拘執新任。俾脫齋服者孫時夏。而此有新任從實卞呈是白遣。至於開金。則佩在民衣系。而四面圍坐。或以恐喝。或以弄誘。使之解給。而民諭以義理。示以抵死不給之意。則孫世麟手自搜索於民所佩囊中。而竟爲解去。則當日座上。豈有公論之說。公論之事乎。民之被誣。固不足惜。而事當從實。而後庶有究竟法。故玆敢具由仰訴
題曰。彼輩之悖擧。洞悉無餘。則其所誣告。自在其中。何足爲屑屑卞白乎。勿以爲嫌。宜當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