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日。
疏首與疏任諸人。奉疏伏閤。倡義疏亦伏閤。丹溪書院請額疏。卒然伏閤。黃夏鎭黃學洙。以疏體之不可幷設。據理呵噤。則其疏首李維黙曰。疏體若果如此。則當停止。而纔設卽撤。有怪瞻視。姑待明日而永罷云。入送疏槩。則政院以陵幸後。多事還送。申退後。奉疏還邸。權檾來訪。春川姜進士履燮京儒三人。來訪。
날 짜 | 1788년 9월 8일 / 정조12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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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
9월 8일 疏首와 상소의 실무진 여러 사람이 상소문을 받들고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였다. 창의록을 위해 상소하려는 사람들 역시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였다. 丹溪書院의 사액을 청하려고 상소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였다. 黃夏鎭와 黃學洙가 상소의 격식에 있어서 함께 대궐문 밖에서 호소할 수 없다는 것을 이치에 근거하여 꾸짖었더니, 그 疏首 李維黙이 이렇게 말했다.
"상소의 격식이 만약 이와 같다면 마땅히 정지해야지요. 그러나 잠시 설치했다가 즉시 철거하면 괴이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있을 것이니, 잠시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영구히 폐하겠습니다."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내니, 승정원에서는 임금께서 陵으로 행행한 후로 일이 많다며 되돌려 보냈다. 申時가 되어 관무를 마친 후에 상소문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權檾이 찾아왔다. 春川의 進士 姜履燮과 서울의 유생 두 사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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