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日。
罷漏後。大駕擧動。住輦於西氷庫津頭。夜間江水大漲。水滿兩岸。舡窓盡落。大駕不得渡。監役官京畿監司廣州府尹果川縣監工曹判書。一幷罷職。卽始船窓之役。午後船窓成。大駕越江。靖陵距津頭十五里。而日已向申。乃下令經宿。黃泰熙宿沙平。待疏行伏地。而終日不來。日暮渡漢江。宿江村。黃弼熙其翌日朝前。先還。京儒二人。來訪。
날 짜 | 1788년 9월 6일 / 정조12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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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
9월 6일 罷漏 후에 임금의 수레가 행차하여 西氷庫 나루까지 끌고 갔다. 그런데 밤사이에 강물이 크게 불어나 물이 양쪽 언덕까지 가득하고, 선창이 모두 떨어져나가 임금의 수레가 강을 건널 수 없었다. 監役官을 비롯해 京畿監司, 廣州府尹, 果川縣監, 工曹判書가 한꺼번에 모조리 파직되었다. 즉시 선창의 일을 시작하여 오후에 선창이 이루어져 임금의 수레가 강을 건넜다. 그런데 나루에서 靖陵까지의 거리가 15 리인데, 날이 이미 申時가 되어 곧 임금이 야영을 하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黃泰熙는 沙平에 묵으면서 상소의 일행을 기다렸다가 땅에 엎드려 호소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종일토록 오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 한강을 건너 강촌에서 묵었다. 黃弼熙는 그 다음날 아침식사 전에 먼저 돌아왔다. 서울의 유생 두 사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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