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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6월 9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6월 9일 아침식사 전에 趙奎鎭黃聖休承旨 兪恒柱를 가서 만나려다가 (유승지가 없어서) 하인에게 부탁만 했다. 이어서 정승[相] 蔡濟恭의 집에 갔으나 문지기가 막아서 먼저 그 맏아들인 蔡弘遠를 만나 그와의 연분을 빌미로 명함을 드렸다. 그래서 蔡濟恭에게 나아가 절하고 뵙는 틈을 타서 사액을 청하는 일의 전말을 말했다. 蔡政丞이 이렇게 대답했다. "사림의 일에 대해 내가 무엇을 알겠소." 趙奎鎭가 일어나 청을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유생들이 올라온 것은 오로지 대감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대감께서 만약 이끌어주시지 않는다면, 영남의 선비들은 어디에 가서 아뢰겠습니까?" 蔡政丞이 좋은 낯빛으로 대하면서 크게 근심하는 빛이 없었다. 趙奎鎭가 다시 일어나 청을 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고 많은 말을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疏廳의 설치 여부가 아니더라도 대감의 지시를 한 번 듣고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蔡政丞이 이렇게 대답했다. "반드시 疏廳을 설치해야 합니다." 사례를 하고 돌아갈 때에 趙奎鎭가 또 다시 청을 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계책을 아뢰는 것은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미한 선비라 정승 어르신의 문에서 발걸음이 어긋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문을 지키는 사람에게 분부하셔서 특별히 금지시키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蔡政丞이 웃으면서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영남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는 마음을 역시 볼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난 뒤에 黃聖休를 비롯해 趙奎鎭, 黃泰熙, 黃弼熙 등이 일제히 泮村로 나아갔다. 이날 반촌에 머물며 영남 출신의 조정 대신들과 유생들을 모두 碧松亭에 모아서 마침내 사액을 청하는 일을 얼굴을 마주하고 의논했다.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翼成公을 모시는 서원이 사액을 청하는데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을 이치가 없다. 다만 성균관과 四學의 유생들이 모두 학교를 텅 비워놓은 중이라 通文을 어디에다 제출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대개 疏廳을 설치하는 일에 대해 성균관과 사학에 통지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黃道源가 이들과 함께 묵었다가 돌아왔다.

원문


九日。
朝前趙奎鎭黃聖休。往見兪承旨恒柱。借得下人。因往蔡相濟恭家以閽阻。先見其胤子弘遠。。夤緣納啣。而進拜乘間。言請額事顚末。蔡相答曰。士林之事。吾何知之云云。奎鎭起而請曰。今日儒生之上來者。專恃於大監。大監若不指揮。則嶺士於何稟質。蔡相賜顔。無甚落落。奎鎭又起而請曰。京中諸議多言。非特今日設疏與否。一聽大監指揮而決之。蔡相答曰。須爲之也。辭歸之際。奎鎭又請曰。種種稟達計。非不切而寒士蹤跡。齟齬於相門。伏望分付閽人。特爲勿禁。蔡相笑而許之。其眷注嶺人之意。亦可見矣。食後。黃聖休趙奎鎭黃泰熙黃弼熙。齊進泮村。是日留泮。嶺中朝士與靑衿。齊會於碧松亭。遂以請額事面議。咸曰。翼成公書院請額。必無不成之理。但館學俱空館中。通文不知出於何間云云。盖設疏之擧。無館通。則不成故也。黃道源同宿而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