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七日。
以到記科。停伏閤。姜監察肉札來。倡義疏廳。始得館答通。午後出來闕門外。一道兩疏。同時伏閤。恐或相妨。而勢也奈何。掌議鄭奭東。以其伯氏宅東正言通淸。有爲親加資周章之事。身帶疏任。累日未參伏閤。爲未安。請遞任名甚懇。疏首敦勉不遞。倡義疏首及諸疏任。齊進于司僕寺直房云。黃學洙長水儒四人善山黃大一慶州孫進士鼎九。來訪。南監察基萬肉札來。黃承旨昇源遞任。而李敏輔以南行同副令云。
| 날 짜 | 1788년 8월 27일 / 정조12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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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8월 27일 到記科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멈추었다. 姜監察이 고기와 서찰을 보내왔다. 倡義錄을 위한 疏廳이 비로소 성균관의 답장 통문을 받아 오후에 대궐문 밖으로 나갔다. 한 道았에서 두 개의 상소가 동시에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서로 방해가 될까 두렵다. 그러나 형편이 그러하니 어찌하겠는가? 掌議 鄭奭東은 그의 맏형인 宅東이 正言이 될 자격을 얻었기에 직접 품계를 올리기 위해 두루 돌아다니는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상소에 실무를 맡고 있음에도 여러 날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일에 참가하지 못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체직해줄 것을 청함이 심히 간절했다. 그러나 疏首는 체직하지 말 것을 애써 권했다. 倡義錄을 위한 상소의 疏首와 그 실무진들이 일제히 司僕寺 直房에 나아갔다고 하였다. 黃學洙를 비롯해 長水의 유생 네 사람, 善山의 黃大一, 慶州의 進士 孫鼎九가 찾아왔다. 監察 南基萬가 고기와 서찰을 보내왔다. 承旨 黃昇源은 벼슬이 갈리고, 李敏輔는 南行[과거에 합격하지 않고 벼슬에 오른 사람]으로 同副令公이 되었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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