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용 |
8월 8일 釋奠祭의 제사를 마치는 날이라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멈추었다. 아침식사 전에 都事 李龜錫, 正字 洪宅夏, 黃學洙가 찾아왔다가 곧 돌아갔다. 아침식사 후에는 長水의 유생 陸洪鎭을 비롯해 李斯文, 陸斯文, 梁斯文, 陸斯文, 黃學洙가 왔다. 수인사를 한 후에 유생 陸洪鎭이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은 천리가 멀다고 여기지 않고 행장을 꾸려 더위를 무릅쓰고 온 것은 오로지 滄溪書院의 사액을 청하는 일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尙州의 유생들이 먼저 와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여 우리들 일행이 이러한 낭패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長水는 선생 성씨의 발원지이고, 살던 곳입니다. 게다가 서원을 건립한 것이 숙종 계유년(1693)이니, 옥동서원에서 보기에 경중과 선후가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長水의 유생들이 이미 여기에 왔으니, 두 곳의 유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시간을 두고 충분히 의논한 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어제 도착했는데, 여러분들은 오늘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먼저 하기를 다투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黃泰熙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 집사님들의 말씀이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번 상소는 이미 지난달 27일에 대궐문 밖에서 호소할 계책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조금 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서울에 들어오는 날 이번 상소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자는 의견이 마침 이날에 확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일의 기틀이 이와 같을 뿐으로, 먼저 하기를 다투려는 뜻은 없습니다."
長水의 유생이 또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옥동서원에 배향으로 네 선생이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소문의 원본을 보니 단지 으뜸 되는 배향자[元位]만을 거론한 것은 어째서 입니까?"
黃道源가 이렇게 대답했다.
"사액을 청하는 최근의 사례에서는 단지 주된 배향자만을 거론하고 그에 따르는 배향자는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소문의 초안이 이와 같습니다. 만약 근자에 正位와 配位를 나란히 청하는 사례가 있었다면 어찌 기꺼이 그렇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으뜸 되는 배향자를 거론하였으면 그에 따르는 배향자는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상소문에 함께 거론할지의 여부는 의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黃夏鎭와 서울의 유생으로 모임에 온 사람들이 하나 같이 黃道源의 말과 같이하였다. 그리고 黃聖休와 黃泰熙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의 견해도 진실로 陸斯文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근자의 사례가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그것을 따를 뿐입니다."
長水의 유생이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은 근래에 사액을 청하는 사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 서원에는 正位와 配位가 있기 때문에 감히 억견을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상세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얕은 견해의 생각 없는 경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黃學洙가 이렇게 말했다.
"長水에서도 이미 사액을 청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玉洞에서는 이전에 서울에 들어와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였다. 그런데 기세 상으로 나란히 거론할 수 없고, 진퇴의 결정을 玉洞書院과 滄溪書院의 유생들에게 맡겨 다투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종손이 이 자리에 있으니, 종손의 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이 말씀이 옳습니다."
黃道源가 이렇게 말했다.
"玉洞書院과 滄溪書院은 모두 선조를 받들어 모시는 곳입니다. 두 서원이 동시에 일을 시작하여 나란히 임금으로부터 사액의 은혜를 받는다면, 자손의 마음에 경사와 행운이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리를 헤아려 보면 동시에 나란히 사액의 은혜를 입는 이치는 결코 없습니다. 만약 함께 거론했다가 은혜를 베풀지 않는데 들어가게 되면, 玉洞書院의 유생들은 여러 달 동안 체류하며 서원의 재력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서원을 잠시 제쳐두라고 하면 다시 사액을 청할 데가 영원히 없어집니다. 滄溪書院의 유생들이 이미 뒤에 온 것이 되고, 玉洞書院은 상소의 글로 이제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는데 이르렀습니다. 滄溪書院에서는 玉洞書院의 상소 결말을 기다렸다가 내년 봄에 대궐문에서 부르짖더라도 늦지는 않을 것이니, 또한 두 서원 모두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滄溪書院의 유생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이 일은 모두 선생을 위하는 일입니다. 두 곳의 유생이 서로 뜻을 맞추어 일을 이룬다면, 이것은 저희로서 진실로 사리의 당연한 것입니다. 선생의 종손께 하신 이와 같은 말씀은 진실로 정당하고 공평한 말입니다. 玉洞書院의 상소를 모름지기 먼저 하게 하고, 滄溪書院의 상소는 잠시 물려놓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黃夏鎭가 이렇게 말했다.
"종손의 말씀이 진실로 옳습니다. 滄溪書院에서 烈成公을 배향하려고 들였으니, 나는 또한 사사로운 정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소를 시행하는데 이미 선후가 있으니, 종손의 말씀은 저희의 마음을 먼저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滄溪書院의 유생이 이렇게 말했다.
"이 말씀 역시 공편한 의론이십니다. 저희들은 다시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귀하의 서원에서 사액의 은혜를 입기를 바랄 뿐입니다."
疏首인 黃聖休가 옆에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玉洞書院에서 집행하는 일로 호남과 영남이 비록 다르기는 하나, 선생을 향한 사모하는 마음이라면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상소의 일을 함께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생 陸洪鎭 등이 이렇게 말했다.
"감히 명한 대로 따르지 않겠습니까."
이날 예조의 書吏를 초청하여 상소문의 원본을 고쳐 적었는데 그 필법이 아주 정교하여 참으로 다행이었다. 정오 이전에 필사를 시작한 것이 정오가 지나서야 필사를 마쳤다. 長水의 유생들을 비롯하여 黃道源, 黃泰熙, 黃弼熙, 黃翼振, 黃學洙는 필사를 마치고서 사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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