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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청일기(疏廳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WM.1789.4725-20180630.Y185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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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8월 5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8월 5일 趙錫簡, 權檾, 孫潤慶, 趙龜然, 孫必慶, 趙允浩, 李翼遠 등이 찾아왔다. 趙錫簡가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 반촌에서 답장의 편지를 써서 보낼 때 내가 함께 참여하여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편지 속의 말뜻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孫必慶도 이렇게 말했다. "그 답장의 편지를 우리가 과연 썼습니다. 그러나 일의 가장 중요한 기틀이 여기에 이를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불행이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다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일을 마련하라는 뜻을 권하였다. 長水滄溪書院 유생 陸洪鎭과 南原의 黃學洙滄溪書院을 위하여 사액을 청하러 왔다. 黃道源가 이렇게 말했다. "滄溪書院玉洞書院은 같은 몸입니다. 그런데 옥동서원의 일은 시행해 온 것이 이미 석 달에 이르니 반드시 서로 의론할 방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의론도 모두 그렇다고 하였다. 陸洪鎭黃學洙가 이렇게 말했다. "역시 마땅히 서로 의론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갔다. 倡義錄을 위한 소청은 아직 통문에 대한 태학의 답장을 받지 못해 임금께 글을 올리는 것이 기약이 없었다. 그래서 곧 먼저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말했다. 이에 서울과의 의견을 조정하여 다시 상소의 일을 처리하려고 저녁식사 후에 疏首와 都廳의 여러 사람들이 상소문을 받들고 工曹 直房에 들어갔다. 黃聖休黃夏鎭가 상소에 참여하여 거행하고, 黃弼熙板井에 머물며 여관을 지켰다. 黃瑗黃道源가 와서 소청을 설치하는 여러 가지 예절에 참여하여 의론하고 돌아갔다.

원문


五日。
趙錫簡權檾孫潤慶趙龜然孫必慶趙允浩李翼遠來訪。趙錫簡曰。頃日泮村答書裁送之時。吾合參坐。而書中辭意。專然不知。孫必慶曰。其答書吾果書之。而不知事機之至於此。不幸莫大焉。諸人勸更設伏閤之意。長水滄溪儒生陸洪鎭南原黃學洙。爲滄溪書院請額而來。黃道源曰。滄溪玉洞俱是一體。而玉洞之事設施。已至三朔。必有相議之道云。僉議皆然。陸洪鎭黃學洙曰。亦當相議云云而去。倡義疏廳尙未得太學答通。封章無期。故乃以先爲伏閤之意爲言。於是調定京議。更治疏事。夕後疏首與都廳諸人奉疏。入于工曺直房。黃聖休黃夏鎭陪疏而行。黃弼熙留板井守舍館。黃瑗黃道源來參議設疏凡節而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