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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8월 1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8월 1일 李翼遠柳鳳祚반촌의 소청에서부터 도착하였다. 그러나 두 차례 보낸 편지에는 끝내 답장이 없어 괴이하게 생각했다. 疏首 趙奎鎭와 掌議 鄭奭東이 義禁府의 直房으로 都事 李龜錫를 방문하고, 別檢으로 있는 慶州 李鼎秉와 掌議 柳鳳祚가 차례로 도착하여 사액의 상소를 그만두고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李都事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반촌의 소청에서는 어떤 바른 견해가 있기에 체모를 크게 손상시키는 이런 편지를 낸단 말인가? 이번 翼成公의 사액을 청하는 일은 선비의 옷을 입고 선비의 관을 쓴 사람으로 이런 분열된 의론을 갖고서 어찌 사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어서 柳鳳祚에게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면 반촌의 疏首에게 나의 말을 전하시오. 이번 상소에서 만약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그만두면, 그 상소 역시 할 수 없습니다.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으로 서원과 향교의 재력을 많이 쓰지 말고 속히 파하고 돌아가라고 하더라고 하시오." 또 趙疏首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피차에게 좋은 방도가 있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 말에 대해 疏首가 이렇게 말했다. "서원의 일이 비록 사람과 연계되어 있기나 하나 본손의 뜻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황씨들이 어제 이미 그만두고 돌아가려하니, 우리들이 홀로 소청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그 기세에 이렇게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소청에 돌아오니 黃夏鎭가 사환을 거느리고 와서 소청의 기구들을 거두어 보내고 상소의 실무진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가려고 했다. 아침식사 후에 소청을 파하고 돌아갈 뜻으로 반촌의 소청에 사람을 보내고 板井의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玄風의 進士 金重燁가 태학에서 오고, 李翼遠반촌의 소청에서부터 오자 즉시 돌아왔다.

원문


八月初一日。
李翼遠柳鳳祚。自泮中疏廳來到。而兩度所送之書。終無所答。可怪。疏首趙奎鎭掌議鄭奭東。訪李都事龜錫於禁府直房。慶州別檢鼎秉。掌議柳鳳祚。次第來到。因說額疏罷歸事。則李都事大言曰。泮中疏廳。有何正見。出此大損體貌之書乎。今於翼成公請額事。冠儒服儒者。有此携貳之論。而豈可謂士林乎。因語柳鳳祚曰。歸傳吾言於泮中疏首。此疏若罷伏閤。則其疏亦不可。伏閤勿爲多費校院財力。斯速罷去。又謂趙疏首曰。彼此如有好道理。則可矣。疏首曰。學宮事。雖繫士林。而本孫之意。亦不可不顧。黃氏昨已罷歸。則吾輩不可獨坐疏廳。其勢不得不從此逝矣。因還疏廳。則黃夏鎭率來使喚。撤送疏具。將待疏任同歸。朝飯後。以疏廳罷歸之意。送人于泮中疏廳。而還來板井下處。玄風金進士重燁。自太學而來。李翼遠又自泮中疏廳而來。卽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