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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청일기(疏廳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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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7월 29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7월 29일 반촌에 쪽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오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다. 서울에 거주하는 황씨들과 유생들이 두 개의 상소를 함께 올릴 것을 굳이 고집하였으나 옳지 않다고 하였다. 黃監察이 또 疏廳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상소하는 일을 계속 진행할지 물러날지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이 어떻게 처결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상소를 올리자고 의론을 발하고, 상소를 거행하여 치러나가고, 그리고 關文으로 통고하여 답장을 받는 것은 저절로 선후가 있습니다. 그러하니 일은 마땅히 차례를 따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상소의 명부를 돌려보내자는 말이 있는 것은 결코 마땅하지 않습니다. 구차하게 기다리는 것이나, 또한 동시에 모여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은 편한 대로 하는 혐의가 있습니다. 이런 상소라면 반드시 멈추어서 훗날을 기다리는 것이 어떨는지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오래 두어도 저절로 말미암을 수 없는 것을 이렇게 두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명부를 밀어내는 일은 또한 순후한 풍속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사람들이 따르도록 지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행이 거두어 돌아간다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데는 이르지 않을 것이나 여쭈기가 주저됩니다. 이 말의 뜻을 보면 그만두고 돌아가기를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서울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黃聖休黃夏鎭板井의 여관으로 돌아가 서울의 공론을 탐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시비가 마구 일어나고, 서울 밖에 소청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疏首와 疏色, 鄭奭東과 都廳의 趙允浩가 잠시 소청에 머물며 다시 반촌에 통지를 하여 반드시 계획을 조정하려 하였다. 날이 저물자 疏首가 또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상의하는 뜻으로 반촌의 소청에 쪽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상소의 실무진들이 일제히 모인 후에 답을 해왔다. 지어 보낸 답서에서의 뜻은 반드시 다른 날로 미루어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먼저 하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계책이었다.

원문


二十九日。
又折簡于泮中。答書不來可怪。京中黃氏諸人及京儒。以兩疏幷擧堅執。不可。黃監察又裁書于疏廳。略曰。疏事進退。未知僉意何以處之。而鄙見疏擧發論。疏行治來。及關通受答。自有先後。則事當次第爲之。而衆議不一至。有疏帖還送之說。則決不當。苟且等待。且會同時伏閤。亦有借便之嫌。此疏。則必須停止。容竢後日如何。措縱屯久。不能自由者。在此可羞。推帖之擧。亦非厚風。以此以彼。不可隨人指揮。幸卽掇歸。無至曠日。咨趄云云。觀此辭意。極言罷歸。京中議論。不可不從。故黃聖休黃夏鎭。還板井舍館。探京中物議。則是非崢嶸。多有更設京外疏之意。疏首與疏色鄭奭東都廳趙允浩姑留疏廳。盖爲更通于泮中。必欲調定計也。日暮疏首。又以相議伏閤之意。折簡于泮中疏廳。則答以疏任齊會後。裁送答書云。其意必欲延他時日。使不得先爲伏閤計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