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7월 28일 疏首와 두 疏色이 반촌에 사는 상소와 관련된 실무진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상소의 일로 이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께서 일제히 관복을 착용한 것을 뵌 연후에야 임금께 글을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아무쪼록 좀 더 일찍 조정에 나오셔서 工曹 直房에서 만나 뵈었으면 합니다.
얼마 있다가 趙錫簡, 趙龜然, 權檾, 孫潤慶가 연명하여 疏色 鄭夏纘의 편에 답장을 써서 직접 전해왔다. 그 편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듣자니 상소의 일로 오늘 아침에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고자 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대체로 한 道에서 두 가지 상소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서로 의논할 도리는 없겠는지요? 이렇게 경솔하게 앞질러 하는 일이 있으면,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만 아니라, 도리에 있어서도 결코 마땅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어저께 상소의 실무진을 선출하고 道와 논의하는 것을 무시하고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에 이른다면, 이것은 道의 유생들과 모의하지 않고 먼저 하기를 다투는 것과 같은 것이 되니, 유림의 일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기별을 듣고 나서부터 道에서의 여론이 떼 지어 일어나 임무를 처리해야 할 관원들이 소임을 행할 뜻이 하나도 없으니, 이와 같이하고서도 대궐문 밖에서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서원의 사액을 청하는 일은 이미 우리 고향의 일이니, 저희들이 서원을 위하는 정성이 어찌 여러분들의 아래이겠습니까? 道의 여론이 이와 같으니, 통지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사실의 내용을 자세히 밝히어 고하니, 모름지기 굽어 살펴주신다면 다행스럽게도 서로 부딪치는 데는 이르지 않을 것이니 어떻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상소의 실무진 가운데 道의 儒生 명부 또한 다시 찾아갈 뜻이 있으니, 다시 잘 선처해주십시오.
편지를 보고서 가이하다고 놀라고 있을 때에 상소의 실무자인 柳鳳祚, 尹相烈, 李翼遠, 李宗洛가 반촌에서 돌아왔다.
柳鳳祚와 尹相烈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각자가 선조를 위하는 일로 서울에 들어와 애쓰며 고생한 것은 오직 저 상소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번 상소에서 먼저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기로 한 것은 우리들이니, 저들의 상소는 임금께 글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이 상소에 앞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할 수는 없습니다."
李翼遠는 명부를 베어낼 것을 청하고, 柳鳳祚도 그와 같이 말했다.
이에 대해 疏首와 黃聖休, 그리고 黃夏鎭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명부를 베어내는 것을 임의로 한단 말인가?"
疏首가 또 李翼遠를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이 어린 사람의 망령된 말이 어찌 이러한 데까지 이른단 말인가? 상소를 위한 일로 각자 다르게 서울에 들어온 데는 선후가 있으니, 지금 이러한 道의 여론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柳鳳祚, 尹相烈, 李宗洛, 李翼遠 등 여러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문자의 잘못이나 말의 실수는 망발로 귀결되니, 생각해서 좋은 방도를 취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습니다. 대개 좋은 방도라고 하는 것은 저들의 상소와 한시에 나란히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처음과 끝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또한 반촌의 편지 가운데 우리 고향사람의 손에서 나왔다고 하니 괴이하고 또한 개탄스럽습니다."
이렇게 쟁론을 벌이고 있을 때 날이 이미 申時로 집무를 마치고 관아에서 물러날 시간에 이르러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려던 계획은 뜻과 같이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黃監察에게 편지를 썼다. 그에 대한 답장의 편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상소하는 일은 이전부터 겨를이 없어 못하던 것으로 이제 비로소 마련되었습니다. 그래서 상소 중에도 또한 겨를이 없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저들의 상소와 공교롭게도 마주치게 되어 동시에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편의대로 하는 행적은 일이 온전하게 되는데 흠결이 됩니다. 그러나 나아가는 것이나 물러나는 것이 어렵고, 사람을 통해서 대신을 경유하여 결재를 맡는 것 또한 심히 구차하고도 구차합니다. 한시에 상소를 나란히 올리게 되면, 결코 함께 바쳐질 이치가 없으니 둘이 서로 방해가 된다고 할 수 있으니, 그것 역시 깊이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상소를 거행한 것에 이미 선후가 있고, 통지를 받는 것에도 또한 선후가 있으니, 이것이 먼저면 저것이 뒤가 되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뜻으로 자세히 상의하되 만약 끝내 일이 미루어지기만 한다면 중지를 결의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저의 생각은 구차하게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도내의 명부를 함께 돌려주자고 하는 말은 아마도 온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都事 鄭基煥와 進士 崔柱浩가 내방하였다가 곧 갔다. 呂俊復가 鳳山에서 찾아왔다. 孫潤慶와 權檾이 반촌에서부터 와서 다음과 같은 사과의 말을 했다.
"저번의 답장 편지가 비록 우리들의 이름을 썼으나, 편지가 오고갈 때 원래는 참견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대개 답장을 써서 보낼 때 우리 고향사람들은 간혹 붓을 잡고 쓰기는 하나 이름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간혹 붙이는 사람의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원래 참견할 의도가 없었다는 사람이 이름은 어떻게 썼는지 알지 못하겠다. 이것은 괴이하면서도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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