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7월 25일 黃夏鎭와 黃道源 및 黃弼熙가 상소문의 글을 베낄 書吏를 데리고 李大將의 집을 오고갔다. 날이 저물어서야 베끼는 일을 마쳤다. 그러나 베끼는 사람이 경박하고 정밀하지 못하여 미진한 곳이 많아 참으로 한탄스러웠다. 상소문에 대해서는 서울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黃監察이 지은 것을 취했다. 그래서 결국 黃監察의 상소문을 쓰기로 했다. 黃聖休을 비롯해 趙奎鎭, 黃泰熙가 사액을 청하는 상소문을 맡아 제출하는 일로 일제히 泮村에 있는 倡義의 疏廳으로 갔다. 이때 영남의 선비들이 태학에 벌여 앉았고, 典籍 姜世鷹이 曺司 두 사람[善山의 尹相烈와 尙州의 李翼遠]를 불러내고, 또 公事員 두 사람[尙州의 孫潤慶와 醴泉의 朴漢德]를 불러냈다. 公事員 朴漢德가 疏首라고 외치며 맨 먼 尙州의 幼學 趙奎鎭를 추천하였다. 公事員 孫潤慶가 疏首라고 외치며 다음으로 順興의 進士 成彦根을 추천하였다. 班首인 眞寶의 權兌昌가 疏首라고 외치며 마지막으로 安東의 進士 李宗洛를 추천하였다. 맨 처음 사람은 6번 추천을 받고, 그 다음 사람은 3번 추천을 받고, 마지막 사람은 2번 추천을 받았다. 호명하여 추천한 것에 따라 圈點을 할 때에 趙奎鎭와 李宗洛가 모두 이웃집으로 자리를 피했다. 권점을 마치자 曺司가 가서 趙奎鎭 어른께 지명을 받은 것을 전하며 자리에 나갈 것을 청했다. 趙奎鎭가 세 번 사양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마침내 자리로 나왔다. 상소의 실무진을 추천해줄 것을 청하자 趙奎鎭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영남의 선비들이 참으로 많이 참석하셨는데, 각자는 꾀하는 바가 있어 왔을 것입니다. 그러하니 제가 잘 알아서 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여러 군자들께서 잘 생각해서 추천해주시는데 달여 있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응낙했다. 이에 會中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추천이 있었다. 掌議 두 사람[安東의 幼學 柳鳳祚와 善山의 幼學 鄭台東], 疏色 두 사람[玄風의 進士 金重燁와 星州의 進士 崔柱浩]을 추천했다. 그런데 이런 추천이 있은 후에 進士 崔柱浩가 일이 있음을 밝혀 곧 바꾸어 다른 사람[永川의 幼學 鄭夏纘]으로 대신 추천했다. 또한 製疏 한 사람[進士 李宗洛], 寫疏 한 사람[幼學 尹相烈], 讀疏 한 사람[幼學 李翼遠], 都廳 한 사람[尙州의 幼學 趙允浩]를 추천했다. 그리고 會員은 黃聖休, 權兌昌, 趙奎鎭, 趙龜然, 金重燁, 權檾, 趙允浩, 黃泰熙, 李翼遠, 趙錫簡, 孫潤慶, 崔柱浩, 李宗洛, 朴漢德, 尹相烈, 柳鳳祚, 鄭台東이었다. 여러 임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나와 서로 揖禮를 행하였다. 마침내 자리를 파하고 疏廳을 설치할 날을 기약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楊州에 사는 黃象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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