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月初一日。
黃聖休趙奎鎭黃夏鎭黃弼熙。訪金典籍。則疏草已成。但疏中只擧元位。不及配位。盖以京議。援據近例。而嶺人爭之。不得故也。雖曲從京議。而心甚未安。卽袖來就質京中諸處計。又書太學通文。留置于星州崔直講鵬海舍館。以爲待館任薦出後。受答通之地。又與首僕洪五番有所酬酢事。因與金典籍往于李別提龜錫舍館。自疏行略設酒肴。會員南監察必錫李斯文重祖孫斯文潤慶孫正字會慶李進士宗洛尹斯文相烈。凡數十餘人。歸時。轉訪南監察基萬申直講宅和金進士重燁舍館而來。
날 짜 | 1788년 7월 1일 / 정조12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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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 |
7월 1일 黃聖休를 비롯해 趙奎鎭, 黃夏鎭, 黃弼熙가 金典籍을 방문하니 상소문의 초안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상소문 가운데는 단지 배향 인물 중 元位만 거론하고 配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대개 서울에서의 의견이 근례의 사례에 근거하지 영남 사람들이 다투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서울 사람들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기는 하지만 마음이 심히 편하지 않았다. 곧 서울의 여러 곳에 직접 가서 물어볼 것이다. 또한 太學에 보낼 通文을 써서 直講인 星州人 崔鵬海의 저택에 놓아두었다. 그래서 館任이 선출되기를 기다린 후에 답장의 통문을 받기로 하였다. 또한 首僕인 洪五番와 주고받은 일이 있어서 金典籍과 함께 別提 李龜錫의 저택으로 갔다. 上疏를 주관하는 일행 스스로가 조촐한 술과 안주를 마련하는데, 모인 사람은 監察 南必錫를 비롯해 斯文 李重祖, 斯文 孫潤慶, 正字 孫會慶, 進士 李宗洛, 斯文 尹相烈 등 모두 수십여 명이었다. 돌아올 때 발걸음을 돌려 監察 南基萬와 直講 申宅華, 그리고 進士 金重燁의 저택을 방문하고 왔다.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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