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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청일기(疏廳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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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9년 1월 21일 / 정조13 / 기유
내 용
1월 21일 柳鳳祚가 밥을 먹은 뒤 고향으로 출발했다. 여러 달 동안 일을 함께하다가 갑자기 먼저 돌아가니, 서로 어울렸던 정 때문에 서글프고 암담한 심정을 이길 수 없었다. 黃弼熙가 禮曹의 直房에 가서 執禮書吏를 만났더니, 禮曹에서 막 批答에 대한 대답의 초안을 수정해 들이려고 서원에 대한 기록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尙州의 각 서원에 대한 기록이 禮曹에 있지 않아 심히 괴이하게 여겼다고 했다. 書吏는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고 했다. 일의 형편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여러 번 거듭 고했다. 그러자 書吏가 처음으로 批答에 대한 대답의 초안을 작성하여 禮曹判書에게 나아가 고했더니, 글씨를 바르게 써서 다음날 批答에 대한 대답으로 들이라고 했다고 하였다. 批答에 대한 대답의 草案은 다음과 같았다. "尙州의 幼學 趙奎鎭 等의 上疏에 대해 이런 批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들의 말처럼 翼成公의 공로는 제사를 지내 높이 받들 만하다. 그런데 扁額이 빠진 것은 보기 드문 典禮로 흠이 되는 일이다. 해당하는 관아에서 당사자들이 제출한 문서와 장부에 대해 상세히 검토해서 아뢰고 처리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여러 가지 기록들을 취하여 살펴보니, 翼成公 黃喜의 서원은 단지 尙州白玉洞長水의 滄溪祠 두 곳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賜額의 恩典을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유생들이 상소하여 賜額을 내려달라는 청에 대해 마땅히 조정에서는 허락하여 시행하는 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서원의 賜額은 일의 체면이 아주 중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 관청에서 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하니 임금님께서 결재하여 허가하심이 어떠하신지요?" 黃道源成德龍, 그리고 鄭夏澗가 찾아왔다.

원문


二十一日。
柳鳳祚食後發行。累月同事之餘。遞爾先歸。去留之情。不勝悵黯。黃弼熙往禮曹直房。見執禮書吏。則禮曹方修入回啓草。而考見書院錄。則尙州各院錄不在於禮曹。甚可怪也。書吏以此。多有難便之端云。以事機不然之事。累次申復。則書吏始搆回啓草。就贊於禮堂。因正書明日入啓云。啓草曰。因尙州幼學臣趙奎鎭等上疏。批旨內誠如爾等之說。以翼成之之勳之勞。侑食之所尙。闕扁額。可謂曠典也。欠事也。許令該曹詳考。曺在文蹟稟處事批下矣。取考等錄。則翼成公黃喜書院。只有尙州白玉洞長水之滄溪祠兩處。而俱未蒙賜額之恩是白如乎。今此儒疏宣額之請。宜有朝家許施之典是白乎矣。書院賜額。事體甚重。有非臣曺所可擅。便上裁何如云。黃道源成德龍鄭夏澗。來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