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1월 15일 疏首가 다시 禮曹判書의 집을 찾아갔으나, 또 다시 외출하여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어서 妙洞에 가서 參判 李獻慶를 만났다. 李 어르신이 일을 마친 것에 대해 아주 축하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禮曹判書를 만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넉넉한 비답을 내리셨으니 무슨 다른 걱정이 있겠습니까?"
李重祖를 비롯해 金時全, 孫潤慶, 李翼運, 尹相烈가 이른 아침에 찾아왔다. 이날 같은 道의 친구들로 찾아오는 사람이 계속 이어졌다. 仁同의 別檢 李昌胄를 비롯해 慶州의 別檢 李鼎秉, 安東의 別檢 權文慶, 서울에 사는 別檢 尹行喆, 眉叟의 五世孫으로 延川에 사는 許某, 禮安의 權時標, 密陽의 李輝淵, 善山의 金允文, 星州의 上舍 崔柱浩, 安東의 進士 李宗洛, 尙州의 察訪 鄭衡臣, 坡州의 黃宅文, 榮川의 鄭章簡, 安東의 金宗鐸, 永川의 成德龍와 鄭夏澗가 와서 안부를 물었다. 黃道源가 찾아왔다. 漆谷의 李翼運 역시 찾아와 안부를 물었다. 建元陵令 黃瑗가 재직하는 곳에서 편지를 전달하여 안부를 묻고, 本家로부터 명절날에 약밥을 보내왔다. 그 은근한 뜻이 참으로 생각할 만했다. 柳鳳祚와 黃弼熙가 禮曹의 直房에 가서 批答에 대한 대답이 늦을지 빠를지를 물어보았다. 禮曹의 書吏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후의 일은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堂山官이 청원서를 제출하면, 新舊의 堂上官이 자리에 나와서 사액을 내릴지에 대한 처분합니다. 비답에 대한 대답을 한 후에는 서원의 이름으로 바라는 것 세 가지를 갖추어 올리고, 또 사액을 쓸 관원으로 바라는 사람을 갖추어 올려 모두 낙점을 받은 후에 사액을 내릴 절차가 차례로 내려집니다. 그렇게 되면 몇 날이 다시 지체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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