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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청일기(疏廳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WM.1789.4725-20180630.Y185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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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12월 3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12월 3일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멈추었다. 이날 次對를 물리치고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이른 아침도 되지 않았는데 대궐의 命을 기다리게 했다. 그로 인해 備邊司의 즉각적인 재촉이 아주 심했다. 아침식사 후에 처음으로 宰相 蔡濟恭를 次對했으나, 또한 병든 몸을 이끌고 임금을 알현했다. 임금이 다음과 같이 傳敎하였다. "趙進道를 과거시험에서 다시 합격시키는 일은 모든 관원들이 아뢰는구려." 領議政이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비록 趙德鄰의 본래 일을 알지는 못하지만, 趙德鄰의 죄가 이미 씻겼다면, 그 자손이 과거시험에 다시 합격시키는 것은 마땅할 것이며, 많은 관원들 모두가 아뢰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右議政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런 일로 많은 관원들로부터 이치에 어긋난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관원들의 뜻이 이와 같다면, 저는 異意가 없습니다." 四更쯤에 吏曹의 書吏가 과거시험에 다시 합격시킨다는 命을 받들고 英陽에 있는 趙進道의 본가로 내려갔다.

원문


三日。
停伏閤。是日下次對。令諸臣未克早朝。待闕命。因備邊卽催促甚嚴。食後始次對蔡相。亦扶病入侍。傳曰。趙進道復科事。百官稟達。領相對曰。臣雖未知趙德鄰本事。德鄰旣蕩滌。則其孫之復科宜矣。百官俱奏當然。右相曰。臣以此等事。屢被百官之謬說。而百官之意如是。臣無異意。四更量吏曹書吏。奉復科命。下去英陽趙進道本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