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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6월 17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6월 17일 黃聖休趙奎鎭가 다시 右議政의 집으로 가서 절을 하고 일어나 밖에서 상소의 일에 대해 말했다. 처음에는 승정원의 뜻을 알지 못하고서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우의정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승정원의 일을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趙奎鎭 등이 일어나 청을 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삼가 듣건대, 서울 사람들의 여러 의견이라면 모두 疏廳의 설치가 지연되는 것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우의정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말이 진실로 그러합니까? 아무쪼록 속히 疏廳을 설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趙奎鎭 등이 또한 승정원에 (상소문을) 바쳐 올리는 것을 기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하였다. 우의정이 좋은 낯빛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근래에 한 承旨의 말을 듣자니, 다른 상소는 비록 바쳐 올리기가 어렵지만, 이 상소는 누가 막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公議이니, 모름지기 걱정을 말기 바랍니다." 趙奎鎭 등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상소가 만약 임금께 오르면 반드시 대신들의 의견을 모으시겠습니까?" 우의정이 이렇게 말했다. "대신들의 의견을 모으는 일은 기필코 없을 것입니다. 마땅히 이 상소가 해당되는 관청에 내려 보낼 것입니다." 黃聖休趙奎鎭가 서로 번갈아가며 아뢰는데 다른 것이 없었다. 그들은 같은 고향에 안지가 오래되어 주고받는 것이 메아리와 같았으며, 그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한가히 주고받는 말이 많이 있었으며, 대신들의 말이 이미 이와 같았다. 그래서 마침내 疏廳을 설치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날 발길을 돌려 京畿監營으로 갔다. 그런데 洪承旨가 어제 출근했다가 곧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또 만나지 못했다. 다만 그의 아우인 校理를 만났는데, 교리가 잘못 상소하는 일이 많다고 하였다. 그때는 상소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경우가 있었다.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黃道源黃翼振가 찾아왔다.

원문


十七日。
黃聖休趙奎鎭。復往右相家。拜起居外。因陳疏事。初以不知政院之意爲言。右相答曰。政院之事。吾何以知之。趙奎鎭等起而請曰。窃伏聞京中諸議。則皆以設疏遲延。爲慨然。右相答曰。此言誠然矣。須從速設疏可也。奎鎭等又以政院捧入之未可必。爲言。右相賜顔而答曰。近聞一承旨之言。則他疏雖難捧入。而此疏誰可防塞也云。此亦公議。須勿慮也。奎鎭等末乃曰。此疏若登徹。必聚議於大臣。右相曰。必無聚議之事。而當下該曺云。黃聖休趙奎鎭。迭相禀白。無異相。同鄕知舊。酬酢如響。其眷眷之意。終始如一。間多有閒酬酢。大臣之言。旣如此。故遂決意設疏。是日轉往畿營。洪承旨昨出卽入。故又不遇。只見其弟校理校理多以疏擧之非。其時有所防塞。乘暮還。黃道源黃翼振來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