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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청일기(疏廳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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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11월 8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11월 8일 疏首 趙奎鎭가 네 선생을 합친 상소의 뜻을 道의 유생들과 서울에 있는 黃氏 여러 사람들에게 통고하였다. 黃瑗黃道源, 그리고 黃夏鎭가 처음에는 비록 고집을 부렸지만, 끝에 가서는 합의를 해주었다. 全始玉泮村에 있었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했다. 아침식사 전에 疏首 趙奎鎭와 掌議 柳鳳祚가 상소문을 받들고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였다. 얼마 뒤 禮曹에서 창의록을 위한 상소의 疏廳에 임금이 裁可를 알리는 의견문을 전했다고 하였다. 정신없이 삼가 읽어보니, 열 줄의 교지가 글자마다 임금의 크나큰 은혜이고, 영남의 충의에 매우 감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울 밖은 말할 것도 없이 비록 사적을 찾아내거나 성곽을 지키는 사람들조차도 모두 품계를 올린다는 첩문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別錄에 이르러서는 특별히 찌를 붙이면서 入侍한 左相과 右相, 그리고 예조판서에게 등급을 나누도록 교시하고, 그때 해당 承旨가 승정원에서 조사를 나와 자세히 캐물어 살펴서 慶尙監司에게 봉급의 10분의 1을 감봉하도록 했다. 영남의 유생이 된 자라면 이날에 누군들 절로 춤추지 않았겠는가? 얼마 뒤 승정원의 書吏가 또 倡義錄을 위한 상소의 疏廳에 와서 疏首의 이름과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날짜를 기록해서 갔다. 사액을 위한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냈더니, 승정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승정원에 일이 많은데다, 승지께서 入侍하여 잠시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것을 잠시 멈추기를 바랍니다." 말하는 뜻은 오늘이라면 반드시 받아들일 도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인데, 또한 이렇게 하니 참으로 괴이하였다. 세 번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냈으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승정원의 書吏가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곳으로 나와서 또 본 서원과 丹溪書院에서 상소를 위해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한 날짜를 기록해서 갔다. 全始玉이 찾아왔다.

원문


八日。
疏首趙奎鎭。以四先生合疏之意。通告于道儒及京中黃氏諸人。黃瑗黃道源黃夏鎭。初雖持重。末乃純同。全始玉在泮中。故未及知也。朝前。疏首趙奎鎭掌議柳鳳祚。奉疏伏閤。俄而自禮曹傳倡義疏下批。顚倒伏讀。十行絲綸。字字鴻恩。嶺南忠義。極加嗟賞。末乃曰。無論京外。雖探蹤守埤之人。皆給帖加資。至於別錄。特爲付籤。因入侍左右相及禮判。分等爲敎。其時該房承旨。自政院査出推考。嶺伯越俸一等。爲嶺儒者。孰不蹈舞於是日耶。俄而政院書吏。又來倡義疏廳。錄疏首姓名及伏閤日子而去。入送疏槩。則政院曰。院中多事。承旨入侍。姑停止云。意謂今日。則必有捧入之道。而又如是。可怪。三送疏槩。而終不捧入。還邸之際。政院書吏。出來伏閤所。又錄本院疏丹溪疏伏閤日子而去。全始玉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