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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소청일기(疏廳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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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10월 9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10월 9일 또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고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내니, 담당 관료가 있어도 숙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되돌려 보냈다. 오후에도 답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았다. 申時가 되어 관무를 마친 후에 상소문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花開의 全達德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집사님들이 서울에 머문 것이 이미 여러 달에 이르러 노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우리 선조이신 忠簡公께서 상소문 가운데 함께 진술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자손의 마음으로 행장을 꾸려 서울에 올라오는 동안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道南書院에서 사액을 청한 옛 사례를 꺼내보았습니다." 그가 또 이렇게도 말했다. "집안의 숙부님께서 며칠 후에 계속 찾아올 것입니다." 疏首를 비롯해 黃聖休黃泰熙가 상소문을 작성하던 날부터 의논을 하는데 이미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中牟에서 온 편지를 보고, 또 선비 全達德의 말을 듣고 마침내 상소문에 합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黃夏鎭와 疏廳의 회원들이 모두 상소문의 원본을 고쳐 짓는 것 때문에 논쟁을 벌이느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자 논쟁이 잘 정리되지 못한 채 끝났다.

원문


九日。
又伏閤。入送疏槩。則以僚任之或有。未入直爲托。而還送。午後。所答又如是。申退後。奉疏還邸。花開全達德來言曰。僉執事之留京。已至累朔。勞苦。則可想。而側聞吾先祖忠簡公不爲竝陳於疏中云。子孫之心不勝鬱抑。玆以裹足上來。又袖示道南書院請額舊例。又曰。家叔數日後繼至云云。疏首及黃聖休黃泰熙。自製疏之日。已有未安之議。及見中牟書簡。又聞全生之言。遂決意合疏。黃夏鎭及疏廳會員。皆以疏本之改製。爲未安爭辨。至日暮。未敦整而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