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八日。
朝前。疏首疏任。奉疏伏閤。入送疏槩。則政院相議後捧入云。倡義疏槩。則退送曰。可捧之疏。雖一二日伏閤。卽當捧入。不可捧之疏。雖二三年伏閤。不可捧入。斯速退去。嶺儒聞不勝落莫。午鼓後。入送。則政院又謂相議後。捧入云。倡義疏槩。則工房書吏。初不捧納而却出。申退後。奉疏還邸。孫潤慶來言。明日還鄕云。
| 날 짜 | 1788년 9월 28일 / 정조12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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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9월 28일 아침식사 전에 疏首와 상소의 실무진 여러 사람들이 상소문을 받들고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고,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냈더니, 승정원에서 서로 상의한 후에 받아들이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倡義錄을 위한 상소문의 요지에 대해서는 되돌려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상소는 비록 하루 이틀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더라도 마땅히 받아들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상소는 비록 이삼년을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으니, 속히 물러가도록 하십시오."
영남의 유생들이 이 말을 듣고서 낙막함을 이기지 못했다. 정오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린 후에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내니, 승정원에서 또 상의한 후에 받아들이도록 하겠다고 했다. 창의록을 위한 상소문의 요지는 工房 書吏가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쳐 보냈다. 申時가 되어 관무를 마친 후에 상소문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孫潤慶가 찾아와서 다음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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