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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9월 23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9월 23일 疏首와 상소의 실무진 여러 사람들이 상소문을 받들고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고,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냈더니, 또 전날과 같았다. 金吾郞 李龜錫가 대궐의 한 곳에서부터 호소하는 곳으로 찾아오고, 直長 崔陽羽 역시 찾아왔다. 申時가 되어 관무를 마친 후에 상소문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柳鳳祚尹相烈가 倡義錄을 위한 상소의 疏廳으로부터 와서 이렇게 말했다. "승정원의 말을 듣자니 세 가지 상소가 함께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면 어떤 것을 취하고 버릴지를 선택하는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道에서의 뜻은 서로 선후를 정해서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했으면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뜻은 어떠신지요?" 疏首 趙奎鎭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승정원에서 꽁무니를 빼려는 핑계의 말입니다. 세 가지 상소가 비록 함께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더라도, 만약 받아들일 뜻이 있다면 차례로 받아들이면 될 텐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다고 해도 道의 유생들이 승정원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면, 서로 선후로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는데도 자연히 선후가 있고, 일의 체면에 있어서도 또한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으니, 한결같이 대궐문 밖에서 호소하는 선후를 따르도록 차례를 정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회원들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옳습니다." 柳鳳祚尹相烈이, 이러한 뜻을 저들에게 통지하여 자리를 함께해서 의논하도록 하자고 하고는 갔다. 날이 저물어 權檾이 이어서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倡義錄을 위한 상소를 먼저 하고, 본 서원의 상소는 뒤에 하게 하지요?" 趙奎鎭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먼저 하고자 하는 마음은 피차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의 상소가 倡義錄을 위한 상소의 뒤가 되겠습니까?" 그러자 權檾이 서로 의논하도록 하자고 하고는 갔다. 章陵令 呂奎明서울의 유생 두 사람이 찾아왔다.

원문


二十三日。
疏首疏任。奉疏伏閤。入送疏槩。則又如前日。金吾郞李龜錫自一闕內。來伏閤所。崔直長陽羽亦來。申時。奉疏還邸。柳鳳祚尹相烈。自倡義疏廳來言。聞政院之言。則三疏幷伏。取舍爲難云。故道意欲爲相先後伏閤。未知僉意以爲如何。疏首趙奎鎭曰。此政院退托之言也。三疏雖幷伏。若有捧入之意。則次第捧入。何難之有。雖然。道儒欲從院意。則相先後伏閤無妨。而伏閤自有先後。事體又有輕重。一從伏閤先後。而次第爲之可也。會員具曰。斯言是矣。柳鳳祚尹相烈。此意通于彼中。合席相議云云。而去。日暮。權檾繼至。欲先倡義疏而後本院疏。趙奎鎭曰。是則。不可也。欲先之意。彼此無間。而豈以斯文之疏。後倡義之疏乎。權檾亦曰。相議云云。而去。章陵令呂奎明。京儒二人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