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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9월 15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9월 15일 새벽닭이 운 뒤에 黃聖休를 비롯해 疏首와 상소의 실무진들이 報漏門 밖에 나아가 기다렸다. 그때 승지들이 이미 모여 있기에 문을 들어가고자 하니, 하인이 굳이 막았다. 그래서 큰소리로 이렇게 호소했다. "저희들이 서울에 머무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우러러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서울에 머문 지가 이미 넉 달에 이르러 지금 날씨가 쌀쌀해져 사람들의 옷과 먹을 것이 모두 넉넉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상소문을 받아들일 기약이 없습니다. 관원 여러분께서는 어찌하여 저희들의 힘들고 고생스러운 상황을 굽어 살펴 상소문을 받아들여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또한 유생으로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이 모두 70대와 60대의 노인들로 가난과 고생에 이러한데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저희들의 사사로운 고민들로 참으로 관리 여러분께 우러러 고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관리 여러분께 전부 말하여 숨김이 없기 때문이 이렇게 너저분하고 번거롭습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임시 거처로 돌아가 계시면 마땅히 그 일을 위해 서로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즉시 집으로 돌아갔다. 疏首와 상소의 실무진들이 상소문을 받들고 대궐문 밖에서 호소를 하고,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해 왔다. "해당 관리가 낮잠을 자고 있으니 일어난 후에 보내도록 하십시오." 일어난 후에 상소문의 요지를 들여보냈더니 해당 관리가 이렇게 말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임시 거처로 돌아가십시오." 그 말은 아마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괴이하고 의심스러움을 이기지 못해 서울의 유생에게 물었더니, 모두 이렇게 말했다. "비록 임시 거처에 있다고 하더라도 승정원에서 받아들이고자 하면, 임시 거처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알 수는 없었다. 申時가 되어 관무를 마친 후에 상소문을 받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景慕宮令 姜世鷹을 비롯해 直講 南述老, 李重祖, 正字 權文度, 서울의 유생 두 사람이 찾아왔다.

원문


十五日。
鷄鳴後。黃聖休與疏首疏任。進待漏門外。時承旨已會。欲入門。則下人牢拒。因呼籲曰。生等留京之事。向已仰陳。而生等留滯。已至四朔。目今薄寒中。人衣食俱艱。捧入無期。僉令公何不曲諒生等艱辛之狀。而捧入耶。且儒生之上來者。俱是七十六十老人。而艱苦至此。此則生等之私憫。實非仰告於令公之事。而生等之於令公。盡言不諱。故如是煩瀆。答曰。退去依幕。則當相議爲之云。卽還邸。疏首疏任。奉疏伏閤。入送疏槩。則答曰。該令假寐。起寢後。來納。起寢後。入送。則該令曰。勿慮不捧。退在依幕。其言似有可望。而不勝訝惑。問京儒。則皆云雖在依幕喉院欲捧入。則自依幕捧入云。而是未可知也。申退後。奉疏還邸。景慕宮姜世鷹直講述老李重祖權正字文度京儒二人。來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