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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4년 4월 2일 / 高宗 21 / 甲申
날 씨 큰 비바람이 불다가 늦게 맑음
내 용

4월 2일 큰 비바람이 불다가 늦게 맑음
감영에서 회답한 題辭가 당도했다. 말의 뜻에는 심부름꾼을 내려 보낸다고 하여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조사하여 보고한다.[査報]"라는 말이 다시 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되어 한탄스럽다. 감영에 보내는 호소문의 초안은 다음과 같고, 狀頭는 鄭宇載, 權宜恒, 李寅久 등이었다.
삼가 생각건대, 호소문을 품고 감영에 부르짖은 것은 本邑에서 억울함을 풀지 못한 것을 반드시 풀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가 합하께 아뢴 것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합하께 억울함을 외친 것 또한 한두 번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저희가 비록 감히 말을 다하지는 못할지라도 합하께서의 영명하심으로 어찌 묵묵히 헤아리고 마음으로 측량함이 없겠습니까? 저번 제음에서는 또한 말씀이 없으셨으나, 享禮를 빠뜨린 후에 드린 호소문의 제음에서 敎示한 것 안에 "이미 앞서 훈계한 것이 있으니, 반드시 本邑으로부터 징계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어리석고 무식하여 비록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모임에서 문자를 쓰는 것이 어떠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나, "별도의 징계[另懲]"이라고 하는 것은 "별도로 더할 마음을 두고 고려해서 처리한다는 뜻"이라고 반드시 스스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거기에 합당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도한 관청의 제음에 곧장 말하기를 "享禮 때에 소란을 일으킨 것에 많이 놀라 탄식하였다. 그래서 이미 별도의 징계를 하였다."라고 하니, 다시 다른 것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감영의 제음에 근거해서 받들어 시행한다고 말한 "별도의 징계"라는 것은 바로 李在謙, 孫星煥, 辛宗海 몇 사람이 며칠 동안 가두었다가 保釋한 것뿐입니다. 저희는 진실로 당일에 합하께서 제음으로 敎示하신 것이 과연 이에 그칠 뿐이며, 本邑이 봉행한 도리가 또한 과연 이에 그칠 뿐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소란을 일으킨 것은 많이 놀라 탄식하였다."라고 하였으니, 합하의 저 호소문에 대한 제음의 敎示 중에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를 관청이 어찌 알지 못하며, 또한 조사하여 처결할 것이 어찌 있지 않는지요? 저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本邑의 성주에게 감히 한 마디 말인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진실로 程叔子[程伊川]가 말한 "이 이치가 가장 좋은 뜻이다."라는 것을 생각하며, 지금 다시 이 같은 일에 캐물어 처단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저 무리들에 대한 징계는 이미 그 날이 없으니, 저희의 억울함을 푸는 것 또한 그 기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니 저희들은 몹시 절박한 심정으로 이전과 같이 스스로 차마 묵묵히 있을 수가 없으니, 그 송구하여 몸이 움츠려듦을 진실로 스스로 면할 수가 없습니다.
아, 저 무리들이 앞뒤에서 현혹하고 속이니, 저희들 역시 번잡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반드시 하나하나 따라가며 논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합하께서도 역시 남들이 남에게 하는 말을 들으시고, 혹시라도 저희들의 말에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서원의 노비와 저들, 그리고 저희들 가운데 합하께서 각기 몇 사람을 불러다가 합하의 뜰에 세워서 말씀을 들어보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실상에 한 마디라도 어긋나는 것이 있고, 한 가지 일이라도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비록 그 죄를 저희에게 돌리셔서 죽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저들이 한 것이 저희가 호소한 것과 같아서 합하께서 또 이전과 같은 제음으로 한결 같이 本邑의 성주에게 맡겨버리면, 합하의 뜰에서 저희가 호소한 것은 등한히 해서 없어질 것입니다. 오직 합하께서 세상의 도리를 위하시고, 선현을 위하시고, 사림을 위한다고 생각하시고 참작하여 처리하는 것이 어떠신지요? 저희는 몹시 절박함을 이기지 못하여 간절히 기원함이 지극합니다.
제음 ; 이 일을 말하면 또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엄한 징계로 유배의 형에 처한다는 제음의 甘結이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것이 그치지 않고 선비들로 하여금 호소문을 쓰게 하고, 또 과연 깊이 탐구함이 부족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이른바 소란을 일으킨 여러 사람은 한꺼번에 모두 체포하여 엄히 조사하여 보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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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四月初二日。大風雨晩晴。
營門回題。見到辭意。差降慰解。然査報字。還爲生事。可歎狀草。狀頭鄭宇載權宜恒李寅久等。伏以抱狀叫營者。必其不得伸枉於本州者。而今生等得伸於閤下不止一二。而叫枉於閤下又不止一再。則生等雖不敢畢言。而以閤下之明。夫豈不有以默揣而心量之者哉。前題且勿言。闕享後所呈題敎內有曰。已有前飭。必自本邑另懲云云。生等愚騃無識。雖不解公會文字之用下如何。而意謂另懲云者。別有加意裁處之義。必自云者以爲。當然合做底矣。到付官題直曰享禮時作鬧。萬萬骸歎。故已爲另懲云。而更無有別般。據營題奉行施爲其曰另懲。直不過李在謙孫星煥辛宗海若箇人。幾日保囚而已。生等實未知當日閤下題敎之意。果然止於斯而已。而本邑奉行之道。又果然止於斯而已乎。旣謂作鬧爲之萬萬骸歎。則閤下彼狀題敎中。孰是孰非。官豈不知。而又不有査決如何乎。生等終始不敢一言有何於本官城主地哉。誠以爲程叔子所云。此理最好之義。而今又復如此事無究勘。彼輩之懲勵。旣無其日。生等之伸枉。又無其期。則生等痛迫之情。自不得忍默如前。而其爲悚蹙。實無以自逭矣。於乎。彼輩之前後眩誣。生等亦覺多煩。今不必一一追辨。而閤下其亦以人聽人。而猶或有疑於生等之言。則院隸在彼輩在。生等在。閤下請招致各箇幾人。立之閤下之庭。而辭聽而貌面之一言。而有爽一事而有左。雖以其罪反之生等。死無所辭。而就使渠輩所爲。一如生等所訴。閤下其將又如前題。而一諉之本官城主。則閤下之庭生等之訴。將閒月無之矣。惟閤下爲世道。爲先賢。爲儒林思量。而裁處之如何地耳。生等不勝痛迫祈懇之至。題。此事言亦支離矣。而亦有嚴懲刑配之題甘。而尙此不悛。致使儒狀。又來其果不足深究而然是喩。所謂作鬧諸人。一倂捉致嚴査報來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