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26일 맑음
狀本에 대해 답이 주어졌다는 英可의 편지가 심부름꾼을 통해 보내와서 급히 감영으로 달려갔다. 저들 편에서 올린 감영의 호소문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李能挺, 李秉壽, 孫永昌 등이 작성하였다고 한다.
삼가 생각건대, 뜰에다 夏鞀를 세웠는데도 거듭 굽실거려야 하는 것은 원통합니다. 들판에서 저 어진 政事[召棠]를 노래하는데도 모함을 받는 것은 원통합니다. 지금 저희는 다행히 총명한 임금님의 세상을 맞이하여 감사[旬宣]의 교화를 함께 노닐고자 하였으나, 유독 옥산서원 한 가지 일에 있어서만 오래도록 굴종하여 그 억울함을 품게 되고, 모함을 당하여 그 허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번거로움과 업신여김을 피하지 않고 다시 괴로운 심경을 아뢰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불행을 가엽게 여기시고 굽어 살펴주십시오. 대개 서원의 일은 그 처음과 끝이 이미 밝은 촛불과 같아 지붕을 만든 것에 대들보를 포갤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단지 오늘의 일을 말씀드릴 것 같으면, 감영에 호소문을 드리고 간 후에 다시 本府에 호소를 하니, 제음에서 敎示하는 내용은 옛 규약에 근거하여 다시 두 사람의 有司를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이것은 벌어진 사이를 서로 맞게 하는 도리이며, 新儒와 舊儒의 구별이 저절로 그 안에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원에서는 마음에 내키지 않아하여 의론을 미루어 진실로 처리하라는 교시를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제사를 받드는 저녁에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과 서원의 선비들이 앉는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애걸하기를 "우리네 또한 글을 읽은 선비이니, 다행스럽게도 집사 대열의 끝자리에라도 서게 하여 선현을 사모하는 정성을 드리게 해준다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다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良洞 李氏들은 결단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간절히 말하기를 "끄트머리의 집사가 오히려 어렵고 중대한 것이 된다면, 바라건대 당직하는데 이름[直日之名]을 참여하게 해준다면 답답하고 울적한 심정이 조금은 줄어들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良洞 이씨들은 이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끝내 돌아갈 곳이 없어 다시 서원의 선비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네가 당직에 참여하거나 제물로 제사에 알현하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해왔다면, 두건과 의복을 깨끗이 차려입고 서원에 있는 선비들의 뒤를 따라 서원의 뜰에서 우러러 拜禮를 하게 해주는 것은 또한 어떠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良洞 이씨들은 오히려 위협을 더하며 "비록 향례를 빠뜨리더라도 모두 들어줄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 모두 西上房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 듣고 알게 된 것은 서원의 선비들 역시 모두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의아해하며 어떻게 할지를 정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서원의 선비들은 끝내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享禮는 이미 시간이 늦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오래도록 상의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과 우리가 서로 고집하고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서원에서 享禮를 빠뜨리는 것은 어찌 크게 미안한 것이 아니겠는가? 옥산 이씨는 바로 本孫이고, 여러 儒生은 곧 後學이 된다. 본손과 후학은 제사에서 함께 변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아마도 斯文의 의리에 걸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 일이 이루어지게 됨을 고하고, 舊儒에서는 단지 한 사람의 유사만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良洞 이씨들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파도와 같은 감정을 격렬하게 표출하며 있지도 않는 일을 꾸며내어 本府에 호소문을 올려 세 사람의 선비가 잡혀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감영에 호소하여 남을 못된 곳으로 밀어 넣어 해지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계획이 교활하고 그 심정이 참으로 심합니다. 저희가 진실로 혹시라도 무리를 짓고 세를 만들어 서원의 선비들을 몰아내었다면 참으로 그 죄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단지 新儒로서 제사를 행한 것이 죄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라면 고시한 것에 또한 말이 있습니다. 文元公의 밝으신 혼령께서 단지 舊儒가 올린 제사만을 흠향하고, 新儒가 정성으로 올린 예절은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때에 舊儒의 獻官이 예를 집행하러 엄숙히 자리에 있는데 저희가 망령되게 스스로 멋대로 행동했다면, 책임은 마땅히 저희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舊儒들은 함께 모의를 했기 때문에 저희를 피한 것이며, 이미 서원의 뜰에는 새벽빛이 나타나 향례가 늦었습니다. 장차 향례를 빠뜨리게 되었는데 제수를 올리지 않겠습니까? 저 良洞 이씨가 처음에는 고의로 놓아주었다가 끝에는 허물을 잡고 일망타진하려는 계책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저희는 모함을 받아 억울함이 더해만 가니 어찌 그 끝이 있겠습니까? 저희가 애절하게 노력하면, 그것을 보고 어지러움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벌어졌던 사이를 맞추고자 하면 그것을 보고 멋대로 빼앗는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야 고분고분하다고 하고, 공손하고 삼간다고 하는 것입니까?
저 良洞 이씨의 무리들은 암암리에 저희와 함께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조정에서 명시한 것을 따르지 않고, 이제 감영과 府에서 제음으로 내리는 훈계[題飭]를 원하지 않으며, 온갖 계략을 다 부려서 한 가지 일을 싫어하여 완전히 물리쳐 버립니다. 그리고 또한 당일에 고의로 피하는 계략을 지어낸 것은 오늘과 같은 알력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의 피가 원통함은 더욱 깊어지는 물이나 더욱 뜨거워지는 불과 같습니다. 저희 또한 책을 읽고, 선비의 반열에서 몸을 노닐고 나이를 먹었는데, 어찌 의리를 모르고 분수를 뒤로할 수 있으며, 단지 소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능사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일은 기필코 없으며 모함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그러하나 이미 저들의 모함은 분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만을 기록하여 監司의 관소 아래에서 일제히 호소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따로 굽어 살펴 꿰뚫어 보시고 특별히 제음으로 내리는 훈계[題飭]로 화해시켜 보합하려하지 마시고, 감영과 府에 이르는 분란의 폐단을 없애주십시오.
제음을 보지 못했다. 저들이 꾸며낸 무고를 분별해서 논파하는 호소문의 초안은 다음과 같다.
엎드려 생각건대, 저희가 서원의 일로 분하고 원통함을 이기지 못해 지금 또한 호소문을 품고 감영에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使臺를 만나니 지키는 것을 엄히 하여 호소문을 머물게 할 것이라고 하고, 吏廳에 아뢰니 또는 이미 여러 날이 걸릴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흉년에 감영에 머무는데 비용으로 많은 사람이 머물며 기다리는 것이 실로 어려워서 부득이하게 한두 사람이 돌아가 비용을 변통하여 마련해서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호소문을 부탁할 때 마침 저들의 이른바 호소문이 뉴(車+丑) 가운데 있는 한 통을 보았습니다. 저희는 심장과 뼈가 떨리고 얼어붙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들 또한 스스로 죄를 지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실상을 가리려고 저희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활하게도 일체 그 말을 뒤집을 뿐이었습니다.
저들이 만약 호소하지 못한다면, 이미 그 호소를 한 것과 같기 때문이며, 그 또한 이와 같지 않기에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군자가 그 속이기 어려운 것으로는 속일 수 있어도 그 도리가 아닌 것으로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은 비록 삼척동자라고 해도 한때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 합하이시라면 한번 살펴보고서 분명히 아실 것이니, 어찌 그것을 듣고서 조금이라고 믿는다고 염려할 이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염려하는 것은 앞이 밝은 것으로 인하여 뒤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합하의 밝으심이 바야흐로 빛나고 있으니, 저희들 또한 밝은 것을 밝게 분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들의 호소문에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이 서원에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들과 자리를 같이한 자들만 어찌 저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일찍이 말하기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대략 많게는 6~70명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호소문에서 말단의 집사가 오히려 사당의 제사를 주관하는 중임을 맡게 된다고 말하지만, 비단 말단의 집사뿐만 아니라, 비록 향을 피우고 잔을 올리는 서열이지만 溪亭이라면 더불어 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만약 그 다른 牛角里의 李氏라면 모두 鄕新이 되는 자들인데 어찌 한 가지로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호소문에 서원의 선비들이 모두 나가 끝내 그림자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명색이 근본적으로 선비가 되어 재계하러 묵으면서 제사를 드리려하는 자가 어찌 한 사람의 선비인들 서원의 문을 나가 그림자조차 없을 이치가 있겠습니까? 저들이 이미 재계하는 방에 난입하여 점거해서 몸을 둘 곳이 없어 세력이 용납되지 않으면 별도로 재계하는 좁은 곳에 나아가 저들과 더불어 섞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들의 호소문에 향례 때가 늦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남의 습속은 닭이 울고 새벽에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균관[學宮]에서도 역시 그와 같이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이 깊어지지 않았을 때 저 무리들이 갑자기 돌입하여 神門을 에워싸고 몰래 침투하여 제기와 향 및 축문을 함부로 차지하여 이미 경계를 해야 할 곳을 고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獻官과 재계하는 선비가 옷을 갖추어 입는 것이 오히려 새벽에까지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곧장 난입하여 지척에서 저들과 서로 넘어지고 큰소리로 떠드는데 정숙한 곳이 될 수 있었겠으며, 또한 어찌 편안히 오로지 재계를 위한 숙소에 앉아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체면상 부득이 하게 옮겨 피해야 했으니, 어찌 근본적인 선비로 조금이라도 저들 중에 나타나 보이겠습니까? 또한 하물며 명색이 有司라는 자에게 말입니다. 有司라면 지금 호소문을 품고 있는 李邁久입니다.
저희는 苦心과 피어린 정성으로 조상의 서원을 비우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으로 府와 감영에 호소문을 올린 것이 서너 번이 아니며, 힘들어도 그것을 그칠 모르는 사람이 어찌 고의로 피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萬이 千에 가깝지 않는 것과 같이 비슷하지 않는 말이니, 간사한 것을 짓고 꾸며서 먼 곳을 밟게 보는 안목을 감히 현혹하겠습니까? 이것은 저희들을 기다리지 마시고, 그 당시 서원의 노비들을 증인으로 삼으십시오. 저들과 저희들 가운데 몇 사람을 부르시어 합하의 뜰에 세워서 사정을 죄인으로 듣기[辭聽]를 청합니다. 한 마디도 같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저희는 그 죄를 돌이키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그리하여도 저희 중에는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대개 저들의 무리는 일단 아주 불쌍하게 여기게 하는 호소문에 수완을 부려서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엾게 여김을 받고, 아첨하는 말씨와 교묘한 말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파고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위에 있는 자가 사람으로서 남에게 듣는 말에 의심이 없을 수가 없어 파악해서 조사하라는 교시를 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 저 무리들이 어찌 곧 사문을 어지럽히는 부류가 되고 선현의 사당에 숨어든 것에 그치겠습니까? 아, 또한 합하께서 죄인을 사면하지 못하여 합하로 하여금 합하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호소문에 들어가 보았으나 앞서의 호소문에 대해 이미 판결처분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다시 판결하여 통렬히 물리친다 한들 어찌 저 무리들이 속이는 것이 단번에 이에 이르게 됨을 알겠습니까? 못내 이만 줄입니다.
감영에 도착한 후에 앞선 호소문에서 대한 처결의 글을 하달하지 않은데다 또 이렇게 올리는 것은 번거롭게 하는 혐의가 없지 않아 올리지 않고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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