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 01권 > 1884년 > 2월 > 10일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884년 2월 10일 / 高宗 21 / 甲申
날 씨
내 용

10일 비
밖에서 재빠르게 여러 사람들이 의론하였다. 저들 무리의 위협하는 모습으로 안전하게 大祭를 지낼 길이 없다고 여겨 校卒을 풀어 금지시키자는 뜻에 합의를 보고 官에다 文報를 올렸다. 이에 文報를 작성하고서 비를 무릅쓰고 달려갔다. 文報의 초안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건대, 본 서원을 보호하려함은 이전의 지지와 같으니, 오늘이 있는 것은 우리 성주 합하께서 首席의 자리에 계시면서 받들고 호위하려는 힘을 아끼지 않고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엎드려 생각건대, 감영과 府에서 "붙잡아 가두라는" 甘結이 이와 같이 매우 엄하여 이번 大祭를 무사히 편안하게 거행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牛覺里 한쪽편의 선비 李在謙이 그의 일족 중에 무뢰배 30여 명을 이끌고 저번에 모여 있던 곳과 派房의 자리에 난입하여 고함을 지르고 위협하기를 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李在謙은 몸을 내던지고 자리에서 뛰쳐나와 사람들을 나누어 내쫓고 갈라서 몰아내었습니다. 무뢰배들은 이를 따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사람들을 끌어내었습니다. 재계하는 방[齋房]을 빼앗아 차지하고, 居齋儒生에게 두건과 의복을 착용하게 하고, 밤새도록 찬방에 거처하게 하였습니다. 이것도 오히려 모자라 바야흐로 밖에서부터 불러 모아 잇따라 이르게 하여 큰소리로 외치게 하여 祭享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지금의 광경을 보았다면 필시 享禮를 빠뜨리는데 이를 것이었습니다. 이에 밤이라는 생각도 잊고 달려가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특별히 염려해주셔서 빨리 將羅를 출동시켜 혼란을 그치게 하여 향례를 안전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천만번 일제히 호소하며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음 ; 서원에 향례를 드리기 위해 바로 재계하는 날에 이런 시끄러운 사단이 있어 지극히 놀랐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만약 향례를 빠뜨리는 지경에 이른다면, 어찌 심히 부당하지 않겠는가? 新儒와 舊儒를 막론하고 마땅히 그 벌이 있을 것이다. 벌어졌던 사이가 합쳐 조용하고 편안하게 되기를 힘쓰도록 장차 이끌어야 할 것이 이것이다. 만약 끝내 그칠 줄을 모르면, 마땅히 감영에 보고하면 엄하게 처벌할 것이다.
사람을 보내 엄히 금하겠다고 하지 않음이 없으니, 제음의 말이 이와 같아 소홀하고 또한 신유와 구유를 막론한다는 양쪽을 모두 들어 말한 한 조목의 말은 더욱 통탄스럽다. 저들 무리가 진창을 건너 사방에서 와서 모인 자가 또 얼마인지를 알 수 없다. 고함치고 위협하는 말이 어지럽게 뒤섞임이 시장과 같다. 예절로 배향하고 재계를 바르게 하는 곳이 어찌 이와 같이 크게 미안한 곳이 되었는가? 저녁식사 후에 廟門을 힘으로 빼앗아 金牢를 열고 典祀廳에 廟直이를 가두었다. 隊伍를 지어 교대로 지키니 사당 내의 기운이 심히 두려웠다. 밤중이 되지 않았는데 무리를 나누어 돌입하여 일시에 소리치며 사방에서 일어나 사당의 마당을 가득 채우고 神門을 에워쌌다. 그리고 각자는 몽둥이 하나씩을 지니고 일제히 소리치면 그 소리에 맞춰 호응하는 것이 마치 치고 찌르며 유린하는 형상과 같았다. 불빛이 깜박거리는 가운데 간혹 冠을 쓴 자나 두건을 쓴 자가 한쪽 편에서는 노래를 부르느라 정신이 없고, 한쪽 편에서는 제사를 드리고는 물러나와 "우리가 이미 제사를 드렸다."라고 하였다.
아, 아 애통하도다. 國學에서 大祭를 드리는 의식과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 大典인가? 그리고 감히 이렇게 하고서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는 자가 또한 선비로서 이름을 삼을 수 있으며, 서원에 일을 맡고자 하는 자일 수 있겠는가? 여러 선비들이 손을 쓸 곳도 발을 들이밀 틈도 없어 마침내 享禮를 빠뜨리고 서원을 떠나 숙소로 돌아오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이미지

원문


初十日雨。
外齊諸員議以爲彼輩之危怖爻象萬無安享之路。合以發校禁戢之意。文報于官。乃修文報。冒雨馳走焉。文報草。伏以本院之保護如前支。有今日者。莫非我城主閤下莅在首蓆。極力尊衛之力。且伏念營府捉囚之甘題。如是截嚴。今番享禮。意謂無事安行矣。所謂牛覺里一邊儒李在謙。率其渠族中無賴者三十餘人。前期屯聚及其派任之席。攔入咆喝。罔有紀極。而在謙呈身出座裂去派抵。無賴輩從以拳踢之扶曳之。奪據齊房。使巾服齊儒。而終夜冷處。此猶不足而方從外招聚追到。而唱言防享。目今光景。必至闕享。乃已爲?以罔夜馳報。伏乞特賜軫念。亟出將羅。以爲戢亂。安享之地。千萬齊籲祈懇。題。院享正齊之日。有此鬧端。極爲駭然。因此而若至闕享之境。則豈非萬萬未安之甚乎。無論新舊儒。當有其罰。務從和同。以爲安穩將率之地是矣。若終不知戢。則當報營嚴處向事。不惟不發差嚴禁。題辭如是沁泄。而且無論新舊儒。一條語對擧。尤爲痛歎。彼輩之跋涉泥濘四面來集者。又不知幾許。而咆喝難糅。便同一市場。禮享正齊之所。寧有如是萬萬大未安地乎。夕後因攘奪廟門開金牢。囚廟直於典祀廳。作隊輪番守直。廟內氣像甚凜怖。夜未及。分羣突之聲一時四起充滿廟庭。圍匝神門。而各持一杖。齊喊響應。有若擊刺蹂躪之狀。火光明滅中。或冠或巾者。一邊唱嗒一邊奠獻而退。曰我已門享云云。噫噫痛矣。國學禮享之儀文節次。何等重典。而乃敢如是而曰云云者。是亦士以爲名者乎。院欲從事者乎。諸齊儒無有措手之地厠足之隙。竟闕享謝院。而退出私次。豈非痛哭處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