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 01권 > 1883년 > 11월 > 15일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883년 11월 15일 / 高宗 20 / 癸未
날 씨 맑음
내 용

15일 맑음
齋任이 장차 향례를 행하려 할 때 저들 무리가 소란을 일으키며 막고 희롱하여 나가려하지 않았다. 향례를 빠트려 관청에 제출할 文報를 작성했다. 두 사람을 보내 오래 기다리게 하고, 겸하여 일전에 퇴자를 맞은 두 차례 감영의 제음이 당도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했다. 문보의 초고는 다음과 같다.
삼가 이번 望香禮에 대해 여쭈옵니다. 본 서원의 유사가 서원 안에 당도하자 저 한쪽 편의 사람들이 전과 같이 저들을 많이 모으고, 거짓으로 뽑은 자칭 유사라는 자가 이미 먼저 본 서원의 임원과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아울러 앉은 채로 가까이서 대치하였습니다. 아침에 향례에 마음을 쏟으려 할 즈음에 본 서원의 원임이 재계할 옷을 갖춰 입으려고 하니, 저들 또한 같이 들어가 향례를 거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본 서원의 원임과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꾸짖으며 타일렀다. 그래서 양측의 유사가 동틀 무렵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버티어 나란히 향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들이 이후에도 차례로 번갈아가며 볼모로 삼아 또 향례를 허락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저들이 곧 나막신을 집어 들고는 재계할 용구들을 나누어 나란히 향례를 거행하려하여 본 서원의 임원이 예복을 갖추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차하게 향례를 행함은 마지못한 것이었다. 멋대로 저가 혼자 들어가 동시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희 역시 한꺼번에 사양하고 숙소[私次]에서 나왔습니다. 어찌 이 같은 변괴가 있을 수 있습니까? 지극한 혐오스러움의 더함이 예모를 차려야 할 곳에서 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또한 이번에 道會에 두 번 감영에 호소문을 올렸는데, 전후 제음의 敎示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완강하여 살펴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별 생각이 없이 의지하는 바를 한 번에 하나씩 교체하였습니다. 우리 성주께서 일찍이 말씀으로 가르친 것을 우리 또한 봉하여 돌아온 즉 우리는 유사가 되지 않으면 향례를 행하지 않으며, 제계의 옷을 입지도 않습니다. 관청에서는 비록 감영을 탓하지 말고, 상황을 탓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마땅히 이전에 맹세로 교체하여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鄕新의 측에서 차례대로 하자고 종용한 것은 한두 사람의 孫氏와 辛氏입니다. 저들은 제멋대로 만류하기도 하고 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有司만은 양보하지 못하였습니다. 良洞의 유사는 급히 들어가 향례를 행하는 것이 유사이며, 한 번에 하나씩 교체하기로 한 것이 관청에서 정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전후로 마음과 힘을 다하는 지극한 정성으로 先師를 위하여 그 극단적인 것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성주께서 중요한 사람의 의견을 들어 지금 돌이켜 깨달을 일은 없으시니, 오직 성주께서 헤아려 처리하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이미지

원문


十五日。晴。
齊任將行香禮。彼輩作鬧沮戱無已辭出。闕香卽爲文報于官。起送二員能章久。兼到付日前見退兩度營題。文報草。伏以今望香謁。本有司來到院中。則彼一邊人。復如前多聚。渠中冒差。自稱之有司者。已先在座與本任。幷坐押對。至於將朝捻香之際。本任攝着齋衣。則渠亦謂同入行香是去乙。本任與民齊聲責諭。以兩有司無幷香之禮。曉持日晏。而渠愈以後次迭相爲質。又其不。許則彼乃執據木靴。以爲分用齋具。必爲幷行之擧。本任不可以不具服。苟且行禮不得已。任渠獨入。而同時在座。民等亦一倂辭出私次。豈有如此變怪。痛惡之愈去愈甚於體貌所在之地乎。又況今番道會。兩呈營門。前後題敎。不啻明曉。而頑不省悟。衝口所藉。一次一遞。我城主所嘗辭敎。我亦封還。則我不爲有司。而不爲行香乎。不着齋服乎。官家雖曰勿之營門。雖曰勿之形狀。不當前誓不遞退云。又在傍鄕新之逐次慫愚之一二孫也辛也。輩從以肘勸之謂之子。不獨有司之讓之。良洞有司乎促入行香子爲有司。而一遞一番官家之所定也云云。民等之前後苦心血誠。爲先師靡所不用其極。而畢竟以城主藉重今至萬無回悟之地。惟城主有以裁處之。甚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