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7일 맑음
밥을 먹은 후 道의 호소문을 다시 올렸다. 狀頭는 漆谷의 幼學 李相獻, 仁同의 幼學 張來遠, 禮安의 幼學 李中五였다. (호소문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건대, 일이 정중한 데 메여있으면 정중하게 처리해야 하고, 의리가 바른 데로 돌아가는데 있으면 바른 데로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저희가 추위를 무릅쓰고 행장을 꾸려 하나의 성을 둘러싸고 감사의 관사 아래에서 한 목소리로 우러러 하소연을 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제음의 교시는 정중하여 저들을 질책하고 저희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원의 의논에다 해결책을 돌리시고, 이어서 향례를 빠트린 것에 대해 두려워 몸이 움츠려든다고 하셨습니다. 한 구절 한 글자도 선대의 현인을 호위하고 선비의 추세를 바르게 하고자 하는 지극한 뜻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받들어 읽고서 유학의 교화가 다시 일어난다고 감격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만 "부끄러움을 무릅쓴다고 스스로 일컬은 것"은 비록 서원의 선비가 기량을 살피지 못했다고 바른 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단속하는 날이 없이 오직 그 사람들이 후회하고 뉘우치기를 기다리나 끝내 고치지 못한다면 안정이 어느 날에 오겠습니까? 이것이 비록 합하의 일시적으로 포용하려는 성대한 덕에서 나오는 것이기는 하나, 300년 동안 학문을 닦던 곳이 각자가 돌아갈 곳을 둔다면 하루하루가 시끄럽고 요란스러울 것입니다. 이미 이것은 많은 선비들의 불행입니다. 또한 그 시행하려는 조치가 갑자기 돌아보아 거리끼지 않고, 여러 번 엄하게 경계하여 타이름을 받들었으나, 기세가 더욱 방자해집니다. 그러니 甘結을 거두어들인다고 해도 핑계를 댈 것이며, 이와 같이 날뛰는 습속은 옛날과 같을 것이니, 나무람을 피하고 부끄러워하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합하의 별도의 처분이 아니라면 징계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번거롭고 너저분함을 피하지 아니하고 감히 다시 해당 고을에 엄한 관문을 특별히 내려주실 것을 엎드려 빕니다. 그리고 일을 일으킨 괴수로 하여금 두렵게 단속할 바를 알게 하여 후일에 있을 시끄럽고 떠들썩함에 대한 염려를 영원히 막아주시기를 천만번 기원합니다.
제음 : 지난 번 고을 文報의 제음에 이미 훈계하고 타이른 바가 있다. 저들 또한 마땅히 억제하고 단속할 바를 알 것이다. 또한 그 甘結을 거두러 들였으니, 또한 변병을 늘어놓은 일이 있겠는가? 이번 번거롭고 복잡한 것은 후일을 염려한 것에서 나왔으니, 선비에게 기대하는 도리에 또한 어찌 한결같이 훈계하고 타이르기만 하겠는가. 막고 단속하는 도리는 마땅히 해당 府에서 훈령[關飭]을 내릴 것이다.
짐짓 훈령의 말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훈령을 발한다[發關]는 두 글자가 위로하고 타이르는 것이 되어 많은 선비들이 매우 생기가 있었다. 이로부터 (소란을) 멈추어 단속하고 징계하여 힘쓰도록 하는 도리가 나타날 것인지? 이날 도회의 의론에서 본 서원에서 이루어진 이런 비정상적으로 어긋나게 향례를 빠트린 것은 본 고을 사림이 삼가 법을 준수하지 못한 책임이 없지 않다고 하였다. 또한 금번 이 회의석상에서 오히려 다른 고을에 보잘 것 없이 된 것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모두 통문을 발행하여 경계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통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敗家한 뒤에 남들이 그를 패가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옥산서원의 변고는 이미 영남의 70고을의 말학과 후생들에 두루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옥산서원 (회재)선생의 문하에서 옷을 걷어붙이고 책 상자를 짊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 유풍과 여운 속에서 영향을 받고 감화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책을 읽고, 선생의 말에 감복하고, 그 덕을 사모하여 우러러보고 존경하여 그리워한다면, 여러분들은 선생께서 생활하시던 그 고을에서 성장한 것이니, 영향을 받고 감화를 입은 것이 어떠하며, 존경하여 그리워하고 사모하여 우러러보는 것이 또 어떠하겠습니까? 간절한 추모의 정과 사모하는 마음의 고향은 오직 옥산서원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곳뿐입니다. 하물며 선비를 추천하는 조목은 퇴계 선생께서 일찍이 갖추어 획정하고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中人과 庶人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12글자는 우리 무리가 받들어 지켜 바꿀 수 없는 규칙입니다. 이것을 믿고서 받들어 지키는 것은 오직 여러분의 고을에서 여러분이 제사를 드릴 때에 아주 밀접한 것이며, 제사를 지내는 반열을 변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전에 없던 망측한 변고가 한쪽 편에서 갑자기 나와서 향례를 빠트리고 (서원을) 약탈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까? 간절히 생각건대, 저 한쪽 편의 선비들도 역시 우리 회재와 퇴계 두 선생의 풍치와 운치 속에서 자란 사람이거늘 어찌 유독 퇴계 선생의 조목이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며, 또한 본 서원을 약탈하고서도 부당함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반드시 집안을 스스로 패가하는 것이니, 우리 사림이 받들어 지키며 의지하는 것에 어찌 맡아 지키고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고을과 여러분에게도 사양할 수 없는 것이 미쳤으니, 본 고을에서 붓을 휘둘러 통고하면 저희의 변고를 듣고서 감사의 관소로 빠르게 달려가 바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호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각키로 여러분의 고을과 여러분에게 닥칠 일이기에 일을 돕는데 앉은 자리를 거두어 빨리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필경 여러분의 고을에서 회의에 참석한 선비가 다른 고을로부터 보잘 것 없이 취급되더라도 절대로 여러분의 고을을 위하여 심히 개탄하지 마십시오. 이미 갔다면 삼가 스스로 막지 마시고, 이치로써 깨우치게 하고, 정성으로 움직이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 단속하게 하여 과연 감영의 제음과 같이 다시 시끄러운 단서가 없게 된다면, 우리 유학계의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혹시라도 그렇지 않고 한결 같이 날뛴다면, 다시 모임에 통고하여 집안이 마음과 힘을 같이하여 바른 데로 돌아가기를 기약하여 옛날의 규칙을 준수하게 한다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이날 도회의 유생들이 차례로 자신들의 고을로 돌아가는데 孫永愚씨가 처음으로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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